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괘장 (문단 편집) == 동해천의 제자들 == 이후 동해천은 왕족도 가르치면서 유명세를 탔고, 왕부에 고수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문하생이 모여들었다. 동해천 사후 묘비에 이름이 오른 제자는 69명이다. 이 가운데 윤복(尹福)ㆍ정정화(程廷華)ㆍ송장영(宋長榮)ㆍ사계동(史計棟)ㆍ마유기(馬維祺)ㆍ유봉춘(劉鳳春)ㆍ번지용(樊志涌)ㆍ양진보(梁振蒲)를 8대 제자로 꼽는다. *윤복: 별명은 수봉(오래 사는 봉황).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소림 나한장을 하다 후에 북경에 와 동해천의 제자가 되었다. 만두장사를 했으며, 청수한 모습에 피부가 희고 체형이 여자 같아 말라깽이 윤이라 불렸으며 공력이 비범했다. 팔괘장을 자기에 맞게 고쳐 우설장(소혓바닥 장)을 사용했다. 우설장은 엄지를 구부리고 네 손가락을 펴서 딱딱한 장을 사용한다. 후에 궁중에서 관리를 하며 많은 황족들에게 팔괘장을 가르쳤다. 1840년 생으로 69세로 사망했다. 원주를 소림권법 보법과 비슷하게 돌았다. * 정정화: 별명은 응방(당연히 좋은 향기). 어려서부터 씨름을 배웠으며 북경에서 안경점을 했다. 동해천 제자 중에 공력이 가장 으뜸이며 동해천과 기세가 가장 비슷하다. 팔괘장의 원래 이름인 '무극권요신팔괘연환장'을 했으며 원주를 많이 돌았다. 용장(용의 할퀴는 발톱처럼 움푹한 손 모양의 장)을 사용했다. 팔형장을 낮은 자세로 연습했다. 원주는 동해천과 같은 탕니보를 했다. 정정화의 일화는 팔괘장에서는 가장 유명한 전설이다. 1900년 8월 14일 유럽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했을 당시 정정화는 독일군 부대에 단신으로 침입하여 맨손으로 수십 명을 살상했으나, 독일군의 집중 사격을 받아 사망했다. 1848년생으로 향년 52세였다. * 사계동: 목공소를 했으며 여러 무술을 했다. 특히 발차기를 잘 했는데 동해천의 장법에 져서 제자가 되었다. 탕니보 외에 학보, 닭보 등 발을 높이 들며 원주를 했다. 동해천 딸과 결혼하여 만년에 동해천과 같이 살았다. 많은 무기술을 팔괘장에 접목시켰다. 장은 검지, 식지 두 개를 곧게 세우고 엄지를 동그랗게 했다. 1835년생 73세 사망. * 양진포: 별명은 찬정(빛나는 팔각정). 동해천 만년에 사기동 집에 같이 거주하며 배웠다. 그래서 사파와 비슷하다. 제자 중에 가장 어렸으며 총명했고 공부를 잘해서 많은 것을 새롭게 창편해서 팔괘장을 세상에 잘 알렸다. 또한 무기술을 팔괘장에 접목시켰다. 1863년생 69세 사망. * 장점괴: 본명은 아닌 듯하고 점괴라는 이름은 '점을 보는 기이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번개손이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다. 형의권을 배워 팔괘장과 접목시켜 형의팔괘장을 만들었다. 정정화 방식으로 연습하여 그 기세와 공력이 정정화에 근접했다. 그의 제자 중에 강용초가 1920년대에 상해에서 팔괘장 책을 펴서 팔괘장을 세상에 알렸다. 1859년생 80세 사망. * 류덕관: 64수장(류씨직탕팔괘장). 64식은 원주를 돌지 않는 팔괘장 투로에서 예외적인 경우다. 동해천 시절부터 전해진 실전수법을 정리하여 직선투로로 해서 군대교습용으로 만든 것이다. 류덕관은 2대 제자. * 이진청: 음양 팔반장. * 마귀: 성격이 기이하여 일생 혼자만 연습하고 제자를 두지 않았다 한다. * 번지용: 별명은 번분자(성이 번씨인 미친 사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