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괘장 (문단 편집) == 계보 ==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동해천 사후 팔괘장의 분파 과정이다. 어떤 무술이 파가 나뉘면서 '정통성' 문제가 불거지는 과정을 보면 스승의 사후 친족과 수제자가 '내가 친아들/수제자니까 제대로 배웠고 너님은 야매'하고 다투는 패턴이 흔하다. 그런데 동해천은 단기교습의 대가로, 제자를 받을 때도 생초짜뿐만 아니라 이미 무술을 익혀 나름대로 수준급이라 할 사람들도 다수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들에게 굳이 한 가지 가르침을 강제하지 않고 제자들의 경력에 맞춰서 가르쳤다. 그래서 제자마다 '''자신이 배운 대로''' 특징이 명확히 갈렸고 자연스럽게 파가 나뉘었다. 일례로 사계동은 발차기를 잘했기 때문에 사파 팔괘장은 다른 팔괘장에 비해 발차기 기술이 많으며, 정정화는 씨름을 해서 정파 팔괘장에는 씨름 기술이 있다. 동해천이 거세한 내시라서 문파를 이어받을 친혈육이 없었다는 말도 있지만 오해. 동해천이 취직한 곳은 황궁이 아니라 왕부라서 굳이 거세를 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날 팔괘장의 양대 주류라면 윤복의 윤파 팔괘장과 정정화의 정파 팔괘장이다. 윤복의 후인으로 궁보전[* 만화 권아를 보신 분은 산동소패왕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이 이름을 기억할 듯하다.], 마귀 등이 유명했고, 정정화의 후인은 이문표ㆍ손록당[* 내가삼권을 모두 배운 고수로 손식 태극권을 창안했다. 생전에 중국 무술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물급 인사였다.], 양파 팔괘장 양진포의 3대 후인 이자명이 특히 명성을 떨쳤다. 이처럼 팔괘장은 팔괘문파의 장문인이란 개념이 아예 없고, 모든 교육과정을 다 마치면 X파 팔괘장 전인이 될 뿐이다. 이 외에도 음양팔괘장이란 무술도 있다. 전씨 가문에서 가내무술로만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팔괘장과는 투로나 움직임이 상당히 다르다. 팔괘장이 주로 단쌍환장과 팔괘연환장을 수련하는데 반해, 음양팔괘장은 동물의 형상을 본딴 투로 8개가 있고, 제대로 수련한다면 투로 하나당 1년쯤 걸린다고 한다. 기본인 음양어장까지 합친다면 최소 9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음양팔괘장이 등장한 이후에 ‘동해천은 팔괘장의 창시자인가?’ 와 ‘동해천은 팔괘장의 시조가 아니다’ 는 논문이 무술잡지에 발표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음양팔괘장측의 하는 사람들이 낸 소문이었다. 이런 주장들은 북경팔괘장연구회의 간부인 강과무, 조대원, 저국용 등이 현지 조사를 통해 거짓임이 드러났으며 강과무는 ‘팔괘장 원류의 연구’ 라는 장편의 논문을 발표하여 이 논쟁을 종료하였다. 현재는 음양팔괘장이 팔괘장 3대에서 갈라져 나간 사람이 최근에 창시한 것으로 밝혀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