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트라 (문단 편집) === 재발견과 발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d_jordan-petra-treasury-vignes.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etra_in_19th_century.png|width=100%]]}}}|| |||| 당시 모습[* 알 카즈네의 왼쪽에서 3번째 기둥이 아예 없어져버린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둥은 1960년대에 요르단 정부에서 복원해 놨다.] |||| 그대로 잊혔다가 19세기에 [[스위스]] 출신인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 이 사람은 [[아부심벨 대신전]]을 유럽에 처음으로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가 [[카이로]]로 가던 중 페트라에 관한 소문을 듣고 [[아론]]의 무덤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다면서 여길 찾아 떠났다. 하지만 여기 살던 [[베두인]]들이 비무슬림 이방인을 별로 환영하지 않았기에 그는 무슬림으로 위장하고 그들과 친해진 끝에 [[1812년]]에 발견에 성공했고 유럽으로 돌아와 여행기를 쓰며 이 도시를 알리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발견한 것 뿐이지 세상에 아예 잊혀져 있던 걸 찾아낸 건 전혀 아니다. 아랍인과 유목민들은 쭉 페트라의 존재에 대해 분명히 인지를 하고 있었다. 부르크하르트는 그저 로마 제국 이래 페트라를 까맣게 잊고 있던 유럽에게 페트라의 존재를 다시 알린 거에 불과하다.] 하지만 부르크하르트는 [[풍토병]]을 얻어서 [[1817년]]에 33살의 나이에 죽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그림으로 그려진 이 모습에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존 상태가 엄청나게 좋기 때문이라서 이게 2천년이 넘었다는 걸 못 믿었을 정도였다. 이렇게 보존 상태가 좋은 건 주변에 험난한 산들이 바람과 온갖 기후를 막아준 것도 컸고 여길 차지한 [[무슬림]]들도 정작 사람 얼굴 같은 것만 [[우상화]]를 막는다고 부수고 다른 건 건드리지 않았기에 상태가 매우 좋은 채로 보존되었다. 더불어 사람이 살기에는 꽤 불편한 곳이라서 여기에 터를 잡고 살아가기 어려운 점도 한몫을 했다. 그렇다고 아예 사람이 살지 않은 건 아니라서 [[베두인]]들이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가고 있긴 했다. 현재도 이 건물들 중 일부는 가이드 및 낙타나 말을 태워주는 일이 직업인 베두인들이 집으로 쓰고 있다. 유적지 보호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500명이 넘는 이들이 대대로 아득한 옛날부터 살아와 이들은 요르단 정부의 허락을 맡고 특별히 거주가 허락되는데 이들을 무턱대고 내쫓았다가는 당연히 반발하기 때문이다. 대신 건물 내부는 개조나 리모델링이 엄격하게 금지되기 때문에 이들이 사는 집은 아득한 옛날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창문이나 문에 한정하여 새롭게 바꾸는 것이 인정된다고 한다. 당연히 건물을 빌려 사는 것이기 때문에 집을 팔 순 없다. 이렇게 화려하고 독특한 외양 덕분에 [[요르단]]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로 꼽히며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더불어 [[2007년]] 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에도 올랐는데 아랍 여러 국가와 이슬람 국가가 많이 지지했다고 한다. 아직도 모래와 온갖 흙 속에 파묻혀진 건물은 엄청나며 [[1926년]]에 발굴, 복원하여 100년이 되어가지만 고작 20%도 발굴이 안 되었다고 한다. [[2000년대]]에도 [[고대 로마]]와 같은 [[모자이크]] 그림이 세세하게 남은 건물이 발굴되었다. [[아랍]]과 [[지중해]], [[북아프리카]], [[중동]]을 거친 무역로로서 중요한 거점이며 물이 풍부하고 큰 도시문명인지라 엄청난 무역 중간지로 전성기를 누렸기에 곳곳에 발굴된 건물을 봐도 집, 극장, 온갖 숙박 시설, 신전, 학교 등으로 파악된 건물이 엄청 많다. 이 곳은 인구가 적게는 2만 이상, 많게는 5만 이상이 산 곳으로 추정되는데 발굴할 때마다 나온 건물들의 규모를 보면 5만 이상이 전성기 때 살아갔으리라 추측된다. [[사막]]이라는 지역적 특징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크고 넓은 도시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알 카즈네 지하를 발굴하니 50대 이상 나이로 죽은 현지인 무덤까지 발견되었으며 온갖 유품과 여러 장식까지 발굴되었다. 더불어 곳곳에 없어졌다고 알려진 온갖 건물 외부에 새긴 얼굴도 연이어 땅 속에 묻혀진 게 발굴되었다. [[2007년]]에 [[정수일]] 교수가 [[KBS 1TV]] 취재로 가 본 적도 있다. 이렇듯 요르단의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기실 요르단은 다른 고대 로마풍 유적지 제라쉬를 비롯하여 온갖 고대 유적지도 꽤 많은 국가라서 페트라만 보고 가면 아쉽다. 덤으로 [[튀르키예]], [[이스라엘]]과 더불어 고대 기독교 유적지들이 엄청나게 넘치는 곳이라 [[성지순례]]하러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기독교도 관광객이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