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펜테실레이아 (문단 편집) == 일대기 == ||[[파일:1200px-Achill_und_Penthesila_(Tischbein).jpg|width=500]]|| [[서사시환]]의 《아이티오피스》에서 디테일하게 다루어지나, 현재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여러 저서에 인용되어 그 내용은 전해지고 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에 의한 은혜 때문에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의 편을 들어 아카이아 연합군과 싸웠으며, 적장 [[아킬레우스]]를 죽이겠다고 호언한 영웅. 그러나 결국 12명-13명의 전사들[* 아이니아, 클로니에, 폴레무사, 데리노에, 에반드레, 안탄드레, 브레무사, 히포토에, 하르모토에, 알키비에, 데리마케이아, 안티브로테, 테르모도사] 과 함께 아킬레우스와 아카이아 군과 싸우다가 아킬레우스가 던진 [[창(무기)|창]]에 오른쪽 가슴을 맞아 절명했는데, 펜테실레이아의 긴 머리를 보고서 적이 여자임을 깨달은 아킬레우스가 죽어가는 펜테실레이아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에 크게 안타까워 했다고 전해진다.[* 입을 맞추었다는 설, 또한 후술한 것처럼 시간을 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슬픔에 빠진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보고 그리스 병사였던 [[테르시테스]]는 시체와 사랑에 빠졌다고 조롱했으며, 심지어 펜테실레이아의 눈을 도려냈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테르시테스를 때려 죽이고, 이는 연쇄적인 불화로 이어졌다. 테르시테스의 사촌인 [[디오메데스]]는 펜테실레이아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끌고 강에 던진다. 아킬레우스는 강에 버려진 펜테실레이아의 시체를 수습해 성대하게 장례를 치루어주었다고 한다. 펜테실레이아가 [[아킬레우스]]의 창에 맞아 죽었다는 최후를 듣고 아버지인 [[아레스]]는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고 한다. [[올림포스]]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산의 봉우리와 계곡을 밟고 지나가자 산과 골짜기가 아레스의 발걸음으로 뒤흔들렸다고 전해진다. 자식의 대한 일화는 거의 전무하지만, 비주류하게나마 아들 전승이 있다. 이름은 카이스트로스(kaystros)로, [[아나톨리아]]에 있는 [[리디아]]의 강의 신이다. [[스트라보]]의 《지리지》에서는 카이스트로스가 펜테실레이아와 아킬레우스(!)의 아들로 등장한다. 그에게서 카이스트로스 강이라는 명칭이 비롯되었으며, 그 근처에 그를 섬기는 제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카이스트로스의 아들은 [[에페소스]]로, 동명의 도시[* 에페소스 시에 존재하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아마존이 건설했다는 전설이 존재한다.]를 건설했다고 전한다.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카이스트로스의 딸이 바빌론의 여왕 [[세미라미스]]라고 서술했다. 아킬레우스가 펜테실레이아를 죽였다는 전승이 주류이지만, 반대로 펜테실레이아가 아킬레우스를 죽였다는 판본도 존재한다. 펜테실레이아가 아킬레우스를 죽이자,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가 [[제우스]]에게 간청하여 아킬레우스는 다시 되살아났고 그후 펜테실레이아를 죽였다고 한다. 아레스는 테티스에게 이 건으로 항의를 했지만 판결을 맡은 [[포세이돈]]이 [[아레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이유는 아레스가 할리로티오스를 죽인 일로 재판받을 때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일 때문. 물론 할리로티오스가 한 [[강간|짓거릴]] 생각해보면 이는 부당한 처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