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펠로폰네소스 (문단 편집) === 역사 === 기원전 13세기에는 이오니아인, 그 뒤에는 도리스인이 점령했고, 기원전 8세기 ~ 기원전 5세기에는 [[스파르타]]나 [[코린토스]] 같은 [[도시국가]]가 건국, 번성하였다. 기원전 431~ 기원전 404년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였고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체결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인근 본토의 일부 지역들과 함께 아카이아 [[속주]]에 속했고, 7~8세기 즈음에는 반도 자체가 펠로폰네소스 [[테마 제도|테마]]으로 재구성 되었다. [[제4차 십자군 원정|4차 십자군]]으로 로마 제국이 공중분해되자 이후에는 [[십자군 국가]]인 [[아카이아 공국]]이 들어섰다. 그러나 1259년 [[펠라고니아 전투]]에서 [[니케아 제국]]한테 패배하고 반도 남부는 니케아 제국의 땅이 된다. [[1308년]], 로마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는 모레아 지역의 방위를 위해 칸타쿠지노스 가문의 미하일 칸타쿠지노스에게 '[[데스포티스]]' 작위를 하사하고 모레아 지역을 통치하게 했다.[* 미하일의 가문명을 보고 눈치 챘을 수도 있겠는데, 훗날 일시적으로 [[팔레올로고스 왕조]]로부터 제위를 찬탈하는 [[요안니스 6세]]와 같은 칸타쿠지노스 가문 출신이다.] 이후 모레아의 데스포티스는 계속 칸타쿠지노스 가문이 세습했지만 공식적으로 하나의 [[번국]]을 이룬 것은 아니었는데, 1349년 [[요안니스 5세]]와의 내전 끝에 황제 자리에 오른 칸타쿠지노스 가문의 [[요안니스 6세]]는 모레아의 데스포티스인 자신의 아들 [[마누일 칸타쿠지노스]]에게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어주기 위해 정식으로 모레아를 데스포티스가 통치하는 번국으로 개편하였다. 이후로도 모레아 전제군주국은 칸타쿠지노스 가문이 계속해서 다스리다가 [[1383년]]에 황가인 팔레올로고스 가문에게 넘어갔다. 1430년대에 이르면 로마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가 데스포티스 시절에 [[베네치아 공화국]]령인 모도네와 코토네를 제외한 반도 전체를 영토로 석권하였다. 멸망 직전에 로마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인근과 이 모레아 반도밖에는 가진 땅이 없었다. 이 시기 [[모레아 전제군주국]]은 궁정을 미스트라에 두고 팔레올로고스 왕가 출신의 군주([[데스포티스]])가 다스렸는데, 로마 제국이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된 이후 멸망하자, 몇 년 더 버티다 최종적으로 1460년 오스만에게 정복되었다. 최후의 모레아 공동군주였던 토마스는 서유럽으로 망명했고 데미트리오스는 [[에디르네]]에 감금되었다. 모도네와 코토네도 얼마 후 오스만이 차지했다. 이후 [[2차 빈 공방전]]에서 오스만이 패배하자 결성된 [[신성 동맹]]에 가담한 베네치아가 모도네와 코토네를 포함한 모레아를 1699년에 오스만에게 할양받았지만 얼마 후 다시 오스만에게 할양해야 했다. 그리고 1830년 그리스 독립과 함께 그리스령이 되었고 1893년 본토와 이어지는 부분에 [[코린토스 운하]]가 건설되어 섬이 되었다. [[2004년]]엔 그리스 본토 안티리오와 펠로폰네소스 리오를 잇는 [[https://www.ytn.co.kr/_ln/0104_200408090030599791|'''리오-안티리오 다리'''가 완공]]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