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편견회의 (문단 편집) ==== 전개와 결말 ==== >"군벌의 악습은 이미 습성이 되어 있다. 이것을 제거하기는 어렵다. 나는 지금 내외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실로 고민이 크다." >---- >1929년 1월 5일 장제스의 일기. 1월 1일 개막식 이후 1월 5일 1차 대회를 시작으로 1월 26일 폐막까지 5차에 걸친 대회가 열렸다. 1월 5일 1차 대회에서 허잉친이 주비회의 경과 보고 후 회의규칙을 통과시키고 이에 따라 국방, 편제, 경리 등 5개 위원회를 두고 각각 리지선, 옌시산, 펑위샹, 리쭝런, 허잉친을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심사위원회를 구성했다. 1월 8일의 2차 회의에선 장제스, 펑위샹, 옌시산이 도출합 합의에 따라 각 집단군 총사령들이 각 집단군 소속 병력, 군비 상황을 직접 보고하고 편견회의 비서처를 구성했다. 그리고 편견회조례에 상무위원회를 두는 조항으로 첨가하기로 결의했다. 11월 3일의 3차 대회에서는 쑹쯔원이 <군비총수의 확정과 재정통일을 실행하기 위한 방안제안>을 제출하여 통과시켰는데 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중앙에 속하는 세수에 관해서는 반드시 중앙에 귀속시킨다. 2. 재정분야의 인사와 행정을 지방에서 간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현재 각군의 경비로 지급되고 있는 각 철로의 수입도 모두 재정부로 귀속시킨다. 4. 각성의 주둔군대(성방군)의 경비도 모두 군비에 포함시켜 각성에서 중앙의 세수를 사용하는 구실이 되어선 안된다. 5. 군비총액이 확정된 이후에는 군비를 관리하는 방안과 각군에 군비를 지급하는 방안을 편견회의에서 정하여 각 군사기관들이 모두 따를 수 있도록 만든다.|| 17일의 4차 대회는 3차 대회에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17개 조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전국 군대 총수는 보병 65개 사단, 기병 8개 여단, 포병 16개 단, 공병 6개 단 등 총 80만명으로 하되 각 편견구와 중앙 직할의 편류부대가 11개 사단을 넘지 않도록 한다. 2. 군비는 전국총예산의 45% 이내로 하여 매년 1억 92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한다. 3. 현재의 4개 집단군의 관할 지역을 4개 편견구로 하고 동삼성 지역을 제5편견구, 사천 신강 운남 귀주 지역을 제6편견구로 나누되 나머지 중앙에 속하는 각군과 해군은 중앙에서 직접 편견한다. 4. 각 편견구를 설치하는대로 현재의 국민혁명군총사령부, 각집단군 총사령부 등 전투편제는 모두 취소하고 편견 기간 내에는 지휘관의 임명이나 군대의 파견은 편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5. 각 편견구 소속 부대의 군비는 편견위에 보고한 후 재정부와 편견회의 경리부와 협의하여 힌지의 재원에서 지급하되 편견구가 성립된 이후 각사단의 군비는 편견회의 경리부와 각 편견구 경리분처에서 관리한다. 6. 점검을 위해 중앙에서 파견하는 점검조와 해당지역 집단군의 군관들로 함께 구성하는 점검조에서 점검과 검열을 시행한다. 7. 각 편견구의 편견업무를 관장할 기관은 위원제로 운영하되 편견구 소속 부대의 고급 군관 중에서 2~5명을 선발하고 국민정부에서 파견하는 1인, 중앙당부에서 파견하는 1인과 함께 구성한다. 8. 편견관병에 대한 정착 방법으로 각성에서 경찰, 보안대를 편성하거나 기타 여러가지 방안을 강구한다.|| 이에 관하여 원래 60~80개 사단 70~80만명의 규모는 위에서 보듯이 65개 사단 80만으로 확정되었고 원래 초안에 거론된 중앙편견구는 취소되었다. 그리고 편견 기준은 탕산회의에서 그렇듯이 문제가 되어 펑위샹은 전공, 무기가 있는 부대는 재편하고 없는 부대만 해산하자고 하여 1,2 집간군을 12개 사단으로 개편하고 3,4집단군을 8개 사단으로 편견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옌시산은 규모에 따른 일률적 편견을 주장하며 1,2집단군을 10개 사단으로, 3,4집단군을 8개 사단으로 편견하며 나머지는 6~8개 사단으로 개편하고 기타 군대는 중앙에 맡기자고 하며 펑위샹과 대립했다. 장제스는 조정자 역할을 맡으면서 옌시산을 지지했고 본회의에 상정 결과 옌시산의 안이 다수의 지지를 받아 일부 수정 끝에 통과되었다. 22일 5차 대회에서 편견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장제스, 펑위샹, 옌시산, 리쭝런, 리지선, 장쉐량, 허잉친, 탄옌카이, 쑹쯔원 등 11인이 선출되었고 집행부의 주석으로 리지선, 리쭝런, 펑위샹, 옌시산 4인을 선출했다. 그리고 난징, 카이펑, 타이위안[* 후에 베이핑으로 변경되었다.], 한커우, 선양에 1~5 편견구를 설치했고 주석과 부주석을 포함 각각 9인 위원이 운영하게 했다. 그리고 25일에 열린 6차 대회에서 육군군관학교조직요강안을 통과시켜 육군군관학교의 운영을 위원제로 실생하기로 했고 그 위원으로 장제스, 펑위샹, 옌시산, 리지선, 허잉친 등을 선정했다. 1월 26일 페막식에서 미해결된 문제들은 상무위원회에서 처리한다는 것과 2월 2일까지 상무위원회를 정식으로 발족시킨다는 것을 정하였다. 장제스는 폐회식에서 편견회의에서 결정한 것을 성실하게 실행하여 군벌들의 악습을 없애고 혁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회의 중 불만을 품은 펑위샹이 1월 8일 이후 수일간 불참하는 등 편견의 실행에 난관이 있음이 점쳐지는 상황을 의식한 발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