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평산군 (문단 편집) == 문화재 == * 태백산성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되었던 관계로 이 지역에는 평산면 산성리에 태백산성(太白山城), 마산면 다보산에 자모산성(慈母山城), 서봉면 철봉리에 철봉산성(鐵峰山城) 등의 성지가 있으며, 성내에는 당시의 시설물인 장대(將臺)·문루·군기고·창고지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태백산성은 대곡성·평산산성·성황산성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영조]] 때 개축된 것인데, 성내에는 태사사(太師祠, 6·25전쟁 때 불탔으나 지금은 복구되었다.)라는 사당이 있는 등 매우 큰 규모에 속하는 산성으로 주목된다. 태사사는 [[신숭겸]](申崇謙)·[[유금필]](庾黔弼)·[[복지겸]](卜智謙)·[[배현경]](裵玄慶) 등의 신상(神像)을 모신 곳으로, 고려 때 창건되었다가 1796년([[정조(조선)|정조]] 20)에 사액되었다. * 주필대 왕실의 유적으로는 남천읍 보산리에 있는 주필대와 인산면 기린리의 영소대를 들 수 있다. 주필대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조선)|선조]]가 [[의주]](義州)로 몽진(蒙塵)할 때 머물렀던 곳이다. * 영소대 영소대는 [[병자호란]] 다음 해 이른바 남한산성조약에 따라 [[소현세자]]·[[효종(조선)|봉림대군]](鳳林大君)·[[인평대군]](麟坪大君) 등 왕자 일행이 중국 [[청나라]]로 끌려가 8년 동안 치욕적인 억류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 서울로 향하던 도중 하루를 묵은 곳이다. * 관북사, 북수사 [[원효]]가 창건했다는 인산면 기린리 성적산에 관북사와, 평산면 은담리 방원산에 있는 북수사(北岫寺)가 있다. 또한 서봉면 월봉리에서는 고려 후기에 속하는 종(鐘)이 출토된 바 있다. 금암면 제궁리에는 10∼11세기에 해당하는 청자도요지가 있다. * 동양서원, 구봉서원 동양서원[* 東陽書院, [[6.25 전쟁]] 당시 소실되었다.]과 구봉서원(九峰書院)이 있다. 평산온천 부근에는 고려 말의 신안이 종신하도록 이 곳에서 머물며 조선에서 보내는 녹봉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의 배록동유허비(排祿洞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 멸악산 멸악산에는 주천자(周天子) 또는 여진(女眞) 금황제(金皇帝)의 시조묘라고도 전하는 천자묘(天子墓)가 있다. 멸악산은 멸악산식물보호구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갈나무를 비롯해 북부광엽수림(北部廣葉樹林)과 신갈나무가 섞인 혼합림으로 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