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평양성 (문단 편집) === 제24대 양원왕 이후 === >'''(양원왕 재위) 8년, 장안성을 건축하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양원왕-. 1,000년이 넘는 동안 유지될 성곽의 시작이지만 기사는 심플하기 그지없다. >'''([[평원왕]] 재위) 28년, 수도를 장안성으로 옮기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평원왕- 《삼국사기》엔 제24대 양원왕 8년([[552년]])에 장안성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34년 뒤, 태자였던 제25대 평원왕 28년([[586년]])에 드디어 장안성으로 이전한다. 양원왕이 짓기 시작한 이후로 지속적인 수도 이전이 진행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평원왕이 대대적으로 천명, 이후 3대의 군주들을 거쳐 제28대 보장왕 대까지 수도로서 존재했다. '''이곳에서 668년에 벌어진 [[평양성 전투(668년)|평양성 전투]]를 끝으로 고구려가 멸망했다.''' [[양원왕]]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양원왕 대엔 고구려의 황금기가 끝나가고, 귀족 간 내전이 벌어져 국가가 휘청거리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삼국사기》엔 내전의 기록이 없다. 《일본서기》가 인용한 《백제기》 기록.] 이러한 상황에서 양원왕은 평양 서쪽으로 가 평산성을 새로 지어 국정을 다잡으려 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하여 3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준비를 한 뒤, 양원왕의 후계자인 평원왕이 천도에 성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