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평양시 (문단 편집) === 도시 구조 === [[파일:위성 평양.jpg]] 평양 일대의 위성 지도 고대의 주력 도시들은 강이나 산 같은 자연지형을 방어 시설로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는 한반도 또한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강을 남쪽의 방어 시설로 삼고 도시를 강북에 지어서 [[북한산]] 일대를 북쪽 방어 시설로 삼았던 서울과 마찬가지로, 평양 또한 [[대동강]]을 남쪽의 방어 시설로 삼고 도시를 강북에 지어서 [[보통강]]을 북쪽 방어 시설로 삼았다.[* [[한양]], [[뤄양]] 같은 양(陽)자 돌림 도시는 강북을 의미한다. 평양의 양(壤)은 다른 한자이지만, 역시 강북을 의미한다.] 다만 평양의 경우 한반도 내 오래된 고을과는 다르게, 인근에 요새로 삼을만한 산이 별로 없으며 방어 시설의 토대가 산이 아닌 강으로만 형성되었다는 점[* 분지 지형에서 생긴 [[춘천시|춘천]], [[개성시|개성]], [[서울 한양도성]]의 [[사대문 안|안쪽]]이나 배산임수의 [[공주시|공주]], [[충주시|충주]], [[나주시|나주]], [[성저십리]]까지의 한양, 또는 요새로 삼을만한 산성 밑의 고을인 [[광주시|광주(경기)]], [[청주시|청주]], [[전주시|전주]]처럼 한반도 대부분의 오래된 고을들은 산을 끼고 있다.]에서 여타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평양은 본평양, 서평양, 동평양, 남평양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분단 이전부터 쓰이던 구분이다. * '''본평양''': 대동강 북안의 전통적인 평양 중심지를 일컫는다. 이 안에서도 중구역, 보통강구역이 핵심적이며 중구역은 1950년대 영광거리부터 쭉 개발되어 왔다. 1958년 영광거리부터 1970년대 [[천리마거리]], 1980년대 창광거리, 안상택거리 건설, 2010년대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 [[경루동]] 등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는 중심 구역이다. [[중구역]], [[평천구역]], [[보통강구역]], [[모란봉구역]], [[서성구역]]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 '''동평양''': 일제강점기 대동강 동안에 형성된 시가지. [[동대원구역]], [[대동강구역]], [[선교구역]], [[사동구역]], [[대성구역]]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경치가 좋다고 알려진 대성산에 대성산혁명렬사릉, 대성산유희장이 자리잡고 있고 김일성이 생전에 살았던 [[금수산태양궁전]]도 있다. 1989년 13차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이 개최됨에 따라 [[청년중앙회관]], [[동평양대극장]] 등이 건설되었고 김정은 정권 당시 [[려명거리]]가 개발되었다. * '''남평양''': 충성의다리를 통해 연결되는 대동강 남안의 시가지를 말한다. [[락랑구역]] 일대다. 1990년대 초반에 [[통일거리]]가 개발되며 본격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 '''서평양''': (신)보통강 서쪽에 광복거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가지를 말한다. [[만경대구역]] 일대다. 19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당시 [[광복거리]], [[청춘거리]]가 조성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6.25 전쟁]] 이후 남한이 서울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한강 이남까지 서울로 편입시킨 것[* 사실 원래는 북한의 재침을 걱정해서 아예 강남을 수도로 삼고 한강을 북쪽 방어선으로 삼으려던 계획도 있었으나 결국 둘이 합쳐져서 원래대로 강북을 복원하면서 강남도 서울에 편입시켜서 지금의 서울이 완성된 것이다.]처럼, 북한도 평양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대동강 이남 지역으로까지 시가지가 확장되어 현재는 대동강이 시의 중심부를 관통하며[* 다만 대동강 이남 지역이 처음 평양에 흡수된 것은 해방 이전이다. 서울특별시도 1936년에 한강 이남 일부인 영등포가 경성부에 편입되었다. 또한 분단 이전의 대동군 자체가 1914년에 평양 교외지역을 분리해 만든 행정구역이므로 당연히 그 이전에도 대동강이 평양의 관할구역을 관통했다. 실제로 조선시대 행정구역 기준으로 [[한성부]]는 한강 북쪽에만 관할 구역이 있었지만, [[평양부]]는 대동강이 관통했다.] 대동강의 지류인 보통강이 평양에서 합류한다. 다만 북한에서 강남 지역은 강북 지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후달리는 편으로 강남은 평양 노동인력 거주지이고 통일거리 사업 이후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현재 북한이 보여주는 주요 기관은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있다고 보면 된다. 사실 북한 정권 차원에서 강남 개발에 대한 뜻이 없던 것은 아니고 평양의 인구 증가가 통제 정책에도 급속히 늘자 강남 지역을 개발했고, 아예 지하철 건설까지 하면서 강남 개발을 대대적으로 밀어주려 했는데 건설의 난점[* 하저터널 설계를 소련에서 받아오긴 했으나, 시공 능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고, 동평양은 저심도 정도만 해도 암반 지대가 많아 TBM 없이는 건설이 불가능하다.]이 많아 건설 계획이 취소되었고, 이후로 [[평양전차]] 건설로 도시철도로는 연결은 되었기는 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고난의 행군이 닥쳐오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도시개발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기에는 여유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냅두는 것이다. 평양의 독특한 도시 구조는 사회주의 도시계획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은 이념을 반영하기 위한 계획이다. [[대한민국]]이 경제가치에 따라 도심은 주로 부가가치가 높은 고밀도의 업무·상업지구가 형성된 것에 비해[* 물론 서울의 광화문에는 [[정부서울청사|정부기관]]이나 [[세종문화회관|공공시설]]이 있고, 여타 도시의 중심지에는 상업, 업무지구 외에 관공서도 자리잡은 경우가 많다.], 평양의 중심지는 정부 기관이나 공공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남한이 블록 중심의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한다면 북한은 [[통일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등 거리 중심의 신도시 개발을 한다는 것. 예전부터 '버드나무거리' 같이 신도시를 조성하고는 했다. 대로변에는 아파트가 위치하여 있으며, 주택가 내부에 공업·상업지구가 위치하여 집과 직장이 근접한 구조다. 즉 직주근접을 통해서 교통량을 최소화하고, 각 블록 단위별로 자체적인 생활이 가능하게끔 만드는 게 구소련에서 시작된 일반적인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형태이다.[* 여기에는 주민통제의 용이성도 고려되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2020년대의 최근에 들어서는 [[송신·송화지구]], [[화성지구]], [[대평지구(북한)|대평지구]] 같이 블록이나 지구 단위에 가까운 건설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경루동|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는 대놓고 블록 단위로 지었다. 당장 직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살기에는 좋은 배치구조지만,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따르는 남한으로 보자면 '명동 대로가에 주거지가 위치한 것과 비슷한' 도시구조를 이루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하지 않은 게, [[서울특별시|서울]]도 1970년대까지는 그랬다. 서울도 시 중심가인 중구, 종로구에 수많은 주택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서울시내가 확장되기 이전까지는 비슷했다. 지금의 남한 중소도시에 가보면 번화가라 할지라도 조금만 지나면 주택이나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자가용은 물론이고, 대중교통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주거지는 필연적으로 일터와 가까워야 했다. 하지만 이후 경제발전에 따른 지가 상승과 교통수단의 발전이 도심지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구조를 가진 오늘날의 도시구조 형성에 기여한 것이다. 쉽게 말해,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부동산 거래도 이루어지고는 하지만 토지를 사는 개념은 없고, 주택과 건물을 거래하는데[* 이건 홍콩의 토지법제를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홍콩의 토지법제를 따왔고, 북한도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중국의 토지거래를 따라한 것이다.], 이게 상당히 불분명한 개념이기 때문에 [[도심 공동화]]가 이루어 진다거나 할 일이 없다. 그러므로 중소도시이던 시절 그때의 그 느낌으로 이때까지 발전해 온 것. 사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도시가 이러한 구조를 띠고 있다. 1950~60년대에 만들어진 [[동유럽]] 국가들의 도시나 [[소련]]의 도시들은 공장지대 주변에 상업지구가 위치하고 있고, 상업지구 가까이에 주택가가 위치해 있고, 그 주변에 가족단위의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놀이공원이나 녹지, 경기장 같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서방 세계에서는 이렇게 나름대로 깔끔한 구조 때문에 도심의 쇠퇴(Urban Decay)를 막을 수 있는 구조로 호평 받은 바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개발 한 번 하려고 해도 엄청난 시간과 조율과정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도시가 '''아예 새로 짓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심시티]]를 해본다면 이해가 될지도. 예외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과거 국가주도형 경제발전을 이룩한 남한에서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중구역의 중심인 해방산동, 중성동 일대에는 북한의 중앙행정기관이 다수 자리잡고 있다. 서성구역과 대성구역에 걸쳐 있는 아미산 일대에는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등 권력 기관이 자리잡고 있다. 평양 일부 구역, 특히 동평양 쪽에는 거대한 건물들 뒷쪽으로 아직 60년대식 주택 단지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유는 북한의 발전 속도가 남한에 비해 더딘 것도 있고, 주민들이 집을 버리고 이사가기 싫어하는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남한처럼 대규모 도시개발로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멀쩡한데 걍 그대로 집을 쓰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다만 이것도 2010년대 들어 건설붐이 불면서 남한이나 중국처럼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식이되면서 본평양과 그 근교 지역은 남한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주택 건설에 국가적 역량을 동원하는데,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짓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쉴새없이 일을 시켜 딴 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해 사업을 벌인다는 주장까지 나올 지경이다. 2008~2012년에는 [[평양 10만호 건설사업]]이 있었으나 2~3만호 정도만 완공했다. 그 이후 [[창전거리]](2012년), [[미래과학자거리]](2015년), [[려명거리]](2017년)를 시작으로[* [[https://www.joongang.co.kr/digitalspecial|여기]]에서 평양의 재개발 이전과 이후의 위성사진을 볼 수 있다.] 2020년대에는 5만 세대의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이 추진 중이다.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사동구역]]의 [[송신·송화지구]]부터 시작하여 2022년에는 구 [[룡성구역]] [[화성지구]][* 채소를 기르는 온실이 있던 자리를 밀고 건설하는 것으로 추정된다.]에서도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한에서 강남대개발, 1기, 2기, 3기 신도시를 건설해서 수백만호의 주택을 건설했던것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으며, 오히려 엄연히 인구 수백만이 넘게 살고있는 도시에서 건설사업이 없는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다만 남한에서는 집값 때문에 어기지로 짓는 느낌이 강해서 정통성 있는 사업으로 내세우지 않을뿐이다.] 다만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주로 정부 예산으로 건설했다면 2000년대 이후로는 민간회사들의 돈도 다수 끌여다쓴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