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평화통일가정당 (문단 편집) == 역사 == “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섭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007년 8월에 창당하였다. 총재는 통일교 교주 [[문선명]]의 사돈[* 문선명의 3남 문현진이 곽정환의 딸과 혼사를 맺었다.]이자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의 대표를 지냈던 곽정환이 맡았다.[* 축구팬들에게는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알려져 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17대 대선]]에는 후보를 내지 않았으나, 이후 [[18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도합 258명의 후보자를 출마시켰다. 지역구 출마자 수만으로는 선거 당시 집권 여당이던 [[한나라당]]과 같은 수의 후보가 출마했는데, 당시 있었던 245개의 전 지역구에 후보를 등록시킨 당은 한나라당과 이 평화통일가정당 뿐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종교 [[행복의 과학]]에서 창당한 [[행복실현당]]이 있다. 종교 정당이라는 것과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넣는다는 점에서 큰 유사성을 보인다. 그러나 여기는 성공이라도 했는지 기초자치단체 의석을 일부 보유 중이다.] 비례대표 후보를 합친 기준으로는 제1야당이자 기호 1번인 [[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보다도 많은 후보 수였지만 [[망했어요|현실은]]... 18대 총선에서 지역구 245석 중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고, 13명의 후보가 등록했던 비례대표 역시 득표율이 의석 배분을 위한 최소 득표율인 3%에도 미치지 못한 채 1.1%(180,857표)에 그쳐 정당 등록이 취소되면서[* 지금은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인해 폐지되었지만 당시에는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이 2%에 못 미치면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규정이 있었다.] 평화통일가정당은 철저한 실패로 끝났다. 이는 대한민국이 종교인구가 적지 않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정치세력화를 꺼리는 분위기인 데다 여러 종교의 신도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던 결과로 추측된다. 다만 선거구 전역에 후보를 출마시킨 효과가 아주 미미했던 것은 아닌데, 당시 지역구에서 334,715표를 받아 전체 정당 중 6위에 올랐으며 [[진보신당]]이나 [[창조한국당]] 같은 나름 인지도 있는 정당들과도 10만 표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21대 총선에서 235개 선거구에 출마자를 냈던 국가혁명배당금당이 66.2%라는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지역구득표가 비례득표와 비슷한 20만 표 대에 머물렀다는 것을 감안하면 나름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수도권과 달리 남부지방의 일부 선거구에서는 정당득표율을 상회하는 득표력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담양군·곡성군·구례군]]의 양우석 후보자는 선거비 반액 보전선인 득표율 10%를 넘겼고 [[북구 을(대구)|대구광역시 북구 을]]에서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정당이 후보자를 내지 않은 덕에 통일당 박현진 후보가 군소정당 출마자로는 상당히 많은 11,053표를 얻어내기도 하였다.[* 득표율은 13.08%로 득표수와 득표율에서 모두 당내 최고 기록을 올렸다. 당시 30세였던 박현진 후보가 당내 최연소 후보이고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마 사표를 만들 수 없었던 야권 지지층의 표가 결집한 효과였다고 볼 수 있겠다.] 여담이지만 [[네팔]]에 통일교 세력이 세운 네팔 가정당이라는 정당이 있는데 여기서는 국회 의석을 획득한 당당한 원내정당이다. 주요정당은 아니고 2석정도를 보유한 군소정당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장관직을 배출했기는 했다.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41671.html|#]] [[대만]]에는 우주평화통일가정당(...)도 있는데 [[이장(직위)|이장]] 2명이 전부인 원외 군소정당이다. 그래도 선거로 당선되긴 했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