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폐제(남진) (문단 편집) === [[북주]]와의 교전이 벌어지다 === 도중거와 한자고의 죽음은 진천 휘하에 있던 신하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특히 상주(湘州)자사 화교(華皎)가 심했는데 광대 원년(567년)에 화교는 결국 북주에 투항했다. 진욱은 오명철과 순우량(淳于量)을 보내 북주, 화교, [[후량(남북조시대)|후량]]의 연합군에 맞서게 했고 두 부대는 돈구(沌口)에서 마주쳤다. 오명철의 부대는 연합군의 함대를 격파했으며, 화교와 북주의 장군 우문직(宇文直)은 후량의 [[수도(행정구역)|수도]]인 [[형주|강릉]](江陵)으로 도망갔다. 이 때 북주의 장군 원정이 사로잡혔다. 광대 2년(568년), 오명철은 강릉을 포위공격했지만 역부족이어서 철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