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카스 (문단 편집) == 평가 == 포카스는 동시대와 후대 역사가들 모두에게 비판받았다. 이라클리오스는 그를 최악의 [[폭군]]이라고 단죄하고 [[기록말살형]]을 선포했으며, 이라클리오스를 섬기던 시인 피시다의 게오르기오스는 포카스를 "[[고르고]]의 현신" 또는 "지상의 [[레비아탄]]"이라고 지칭했다. 시모카타의 테모필락투스는 그를 "야만인", "반 [[켄타우로스]]", "반 [[키클롭스]]"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포카스가 붉은 [[곱슬머리]]에 툭 튀어나온 짙은 [[눈썹]], 추한 얼굴에 화를 낼 때마다 [[붉은색]]으로 변하는 커다란 [[상처]] 자국까지 있는 끔찍한 인상이었다고 서술했다. 현대 학자들 역시 포카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루이 브레이에(Louis Bréhier, 1868~1951)는 포카스를 "교양없는 군인, 독재자, 쉽게 분노하고 잔인하고 보복을 일삼는 기질을 가진 자"라고 평했다.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1902~1976)는 포카스의 치세는 "무제한적인 공포정치"였다고 밝혔다. 존 핼던(John Haldon, 1948~)은 포카스가 제국에 닥친 위기에 맞서 싸우는 기술이나 경험이 없었던 자라고 평가했으며, 미셸 카플란(Michel Kaplan, 1946~)은 심각한 내부 불안정의 시기에 통치를 시작한 한탄스러운 지도자라고 비평했다. 하지만 월터 캐기(Walter Kaegi, 1937~2022) 교수 등 일부 역사가들은 포카스의 통치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던 것은 동의하지만 지나치게 가혹한 비난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로마 제국의 전선 붕괴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부터 쌓여온 내부의 모순과 갈등, 재정 압박, 갈수록 강력해지는 외세의 압력이 맞물린데서 비롯됐는데, 그것을 전적으로 포카스만의 책임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라클리오스 치세 초기에 사산 왕조의 시리아, 이집트, 소아시아 공략과 발칸 전선 붕괴에 포카스가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2년간 이어진 이라클리오스 부자의 반란 역시 이 사태를 촉발한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분류:동로마 황제]][[분류:동로마 집정관]][[분류:폐위된 군주]][[분류:547년 출생]][[분류:610년 사망]][[분류:7세기 집정관]][[분류:참수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