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카스 (문단 편집) ==== 사산 왕조의 침략 ==== 603년, [[호스로 2세]]는 자신을 [[마우리키우스]]의 장남 [[테오도시우스(마우리키우스의 아들)|테오도시우스]]라고 사칭한 자를 전면에 내세우며, 찬탈자를 몰아내고 은인의 아들을 복위시키기 위한 성전이니 로마인들은 적대하지 말라고 선전하며 전쟁을 단행했다. 물론 실제 의도는 591년 제위를 되찾았을 때 로마 제국에 할양해야 했던 영토를 되찾으려는 것이었다. 사산 왕조군은 타우루스 산맥의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공격했고, 포카스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나르세스가 여기에 호응했다. 호스로는 다라 요새를 포위하였고, 별동대를 파견해 에데사에서 토벌군에게 포위된 나르세스를 돕게 하였다. 사산 왕조군은 에데사에서 로마군을 격파하였고, 나르세스는 가짜 테오도시우스를 에데사에서 보호받게 하였다. 포카스는 도나우 강 건너편의 아바르족과 평화 협약을 체결한 뒤 나르세스-사산 연합군을 상대로 반격하였으나 패배했다. 포카스는 나르세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유인해 죽인 뒤, 여러 장군들을 반역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체포해 처형하거나 감옥에 가두었다. 사산 왕조군은 동로마군이 포카스의 이같은 조치로 인해 약해진 틈을 타 맹공을 퍼부었고, 그 결과 604년 다라 요새를 함락시켰고 591년 이전의 옛 영토를 모두 회복하였다. 이후 간간히 습격대를 보내서 적을 피로하게 만들면서 숨을 고르다가, 607년 대대적인 원정을 감행했다. 당시 동로마군 사령관은 포카스의 동생 도멘치올루스였으나, 군사적 역량은 별로 없었다. 사산 왕조군은 그를 상대로 연전연승하여 메소포타미아 서부와 시리아, 아르메니아, 카파도키아, 파플라고니아, 갈라티아 등지를 모조리 휩쓸었고, 608년엔 사산 별동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빤히 바라다보이는 칼케돈까지 이르러 무력시위를 한 뒤 돌아갔다. 여기에 테오도시오폴리스가 가짜 테오도시오스를 영접한 뒤 사산 왕조에 귀순하였고, 609년 에데사도 함락되었다. 포카스는 이렇듯 동방 속주가 사산 왕조군의 맹공으로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을 기독교로 강제 개종시키려 했다. 이에 유대인들은 608년 대대적으로 봉기해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를 살해하고 현지 기독교도들을 대량 학살했다. 여기에 티레와 아크레에서도 610년 유대인 반란이 일어났으나 곧 진압되었고, 티레의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집단 학살되었다. 이렇듯 제국의 동방 영토에서 기독교 신자들과 유대인들 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유혈극이 벌어지면서, 유대인들은 동로마 제국에 대해 강한 반감을 품게 되었다. 이는 614년 사산 왕조군이 시리아에 이르렀을 때 유대인들이 동로마 제국을 상대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고 사산 왕조군의 편에 선 계기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