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역사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 침공]]과 [[독소 폴란드 점령|독소 분할]] == ||[[파일:attachment/e0079724_4e42d2b02eb9c_1.jpg|width=100%]]|| || [[1937년]]의 폴란드 인구 분포. || ||[[파일:external/worldwartwo.olemarius.net/poland.jpg|width=100%]]|| ||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른 폴란드의 분할선(실선)과 [[폴란드 침공]] 이후 조정에 따른 분할선(굵은 점선). || 폴란드는 1939년에 독일과 소련에게 거의 동시에 [[폴란드 침공|침공]]을 받아 [[독소 폴란드 점령|분할 점령]]되었다. 독일 점령 지역에는 [[폴란드 총독부|총독부]]가 들어섰으며, 소련 점령 지역은 [[우크라이나 SSR]]과 [[벨로루시 SSR]]에 분할 합병되었다. 전후에도 폴란드에 돌려주지 않고 바르샤바가 국토의 중앙에서 동쪽으로 간 듯한 이유이다. 이후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 양측에 저항했고, 이로 인해 심한 탄압을 받았다. 소련은 폴란드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지식인들과 장교들을 [[카틴 학살|학살하였고]],[* 러시아는 한동안 이 학살을 인정하지 않았다. 추모제를 위해 러시아의 초대 없이 (친러시아계 총리만 초대) 러시아로 향하던 폴란드 대통령과 국가 주요 고위인사들(무려 97명!)이 [[폴란드 공군 Tu-154 추락사고|조종사의 과실로 인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아픈 기억이 있다. 러시아에서도 추도사를 보내고 조사에 손을 빌려줬으나 희생자들의 성향이 반 러시아에 가까워 음모론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자세한 것은 [[폴란드 공군 Tu-154 추락사고]]를 참조.] 독일도 폴란드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뒤이어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유대인]] 학살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수도인 바르샤바는 [[바르샤바 봉기|1944년 8월 봉기]] 때 독일군이 도시 전체를 다 쓸어버려 아무것도 안 남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폴란드 정부는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가 독일의 [[프랑스 침공]] 때는 프랑스 서부의 앙제 시, 그 다음에는 런던으로 옮겨가서 [[폴란드 망명 정부|망명정부]]를 구성하고 소련에 억류된 폴란드인과 망명 폴란드인들을 모아서 [[자유 폴란드군]]을 조직해서 연합군과 함께 영국 상공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탈리아, 노르망디, 네덜란드 등지에서 피터지게 싸웠다. 연합군 내에서 폴란드군이 네다섯번째로 큰 군대였다.[* 첫째는 소련, 둘째는 미국, 셋째는 영국이다. 자유 프랑스군은 자유 폴란드군과 비등했는데, 프랑스가 식민지를 회복하고 본토 수복에 나선 1944년 이후로는 확실히 자유 폴란드군보다 늘어났다.] 하지만 망명정부는 소련군이 바르샤바를 점령하기 전에 자력으로 탈환코자 [[바르샤바 봉기|무리한 봉기]]를 시도하여 대패했고, 폴란드 국내군도 큰 피해를 입고 뒤따라온 소련군에게 박해받아야 했다. 폴란드는 2차대전 중 동유럽 전체에서 가장 크고 조직적인 반나치 저항 운동을 펼쳤다. 폴란드의 저항조직 중 하나인 국내군(Armia Krajowa)이 보유한 병력만 40만[* 추산치가 20만에서 60만까지 다양함.]에 달했고, 1944년 [[바르샤바 봉기]]도 일으켰다. 또 폴란드 국내에서 [[폴란드 지하국]](Polskie Państwo Podziemne, 약칭 PPP)이라는 [[임시 정부]]를 세워 이들도 적극적으로 나치 독일에 대항했다. 또한 폴란드는 2차대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 중 하나로, 연합국 기준으로 소련과 중국에 이어 사망자가 3번째로 많은 나라다. 여기서 사망자는 민간인과 군인의 사망을 모두 포함한 수치로 전 인구의 20%가 사망했다. 특히 유대계는 열 명 중에서 아홉 명이 학살당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기 전에 연합국에게 토사구팽당해 폴란드 침공 당시 소련이 점령한 동쪽 땅을 바쳐야 했다. 또한 이걸 논의하는데 폴란드 망명정부한테는 초대는커녕 귀띔도 안해줬고 이에 항의하는 망명정부에게 처칠은 '불만이면 언제든지 연합군을 나가도 좋다'고 무시했다.[* 사실 이는 소련을 계속 같은 편으로 묶어두기 위한 계산임과 동시에 연합국 내에서 '폴란드가 먼저 전쟁을 유발했다'는 인식이 있는 점도 한몫했다. 그러니까 폴란드를 1차대전 시기의 [[세르비아 왕국(1882년~1918년)|세르비아]] 취급하며 푸대접한 셈이다. 물론 이는 독일의 자작극이었고, 전범재판을 치르며 진상이 밝혀지게 된다.] 그래도 소련이 독일의 [[오데르 강]] 동부를 폴란드 영토로 주었는데 웬만한 폴란드 도시보다 산업화가 잘 되어 있는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그러나 이것도 억지로 찾아보면이지, 해당지역을 넘겨받으면서 경제발전이 되지도 않았고 구 독일령 지역은 현재까지도 가난한 지역인데다 동부지역을 빼앗기면서 전후 폴란드는 주기적인 식량난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전쟁 초기부터 후반까지 용감하게 싸운 폴란드 입장에서는 독일의 배상이라면 모를까, 본인들 땅 빼앗기는 대신 던져준 거나 다름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