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역사 (문단 편집) == 동유럽의 대국이 되다 == ||[youtube(RL6zPn1sjhE)]||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65ae56a74c41fb44b513e1a82d1e7565.jpg]]|| || 빈 전투(1683년)에서 돌격하는 [[윙드 후사르]] ||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독일 기사단국]]을 속국으로 만든 후 세력을 크게 불리기 시작했다.[* [[독일 기사단국]]은 1525년에 37대 기사단장 [[알브레히트(프로이센)|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Albrecht Herzog von Brandenburg-Ansbach, 1490 ~ 1568)가 개신교로 개종하고 로마 가톨릭과 절교한 후 세속국가 '[[프로이센 공국]]'이 되었다. 프로이센 공국은 폴란드 왕국의 봉신국으로, 프로이센 공작은 폴란드 국왕의 신하였다. 또 프로이센 공국은 초대 공작 알브레히트의 후손만이 세습할 수 있었다. 이 조항에 따라 1618년에 프로이센계 [[호엔촐레른 가문]]의 대가 끊겼을 때 폴란드 국왕은 프로이센 공국을 회수하여야 했으나, 대외 활동으로 정신이 없던 당시 국왕 지그문트 3세는 알브레히트 폰 프로이센의 아들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Albrecht Friedrich von Preußen 1553~1618)의 사위이자 호엔촐레른 가문의 직계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한 지기스문트]](Johann Sigismund, 1572 ~ 1620)'가 프로이센 공작은 폴란드 국왕의 신하로 남는다는 조건으로 프로이센 공국을 상속받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 결과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동군연합이 탄생하였고, 이는 비극적인 폴란드 근현대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1480년에는 [[킵차크 칸국]]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벌이던 [[모스크바 대공국]][* 중세 후기 러시아의 여러 공국들은 1240년 이후 몽골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타타르의 멍에|몽골의 지배는 1480년까지 이어졌다]].]의 뒤통수를 치며 킵차크 칸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독일 기사단국과 싸우느라 킵차크 칸국을 도울 수는 없었다. 독일 기사단국은 이미 폴란드의 속국이었지만, 계속해서 독립을 시도하였다. 이때의 전쟁은 독일 기사단국의 독립 의지를 완전히 꺾기 위한 전쟁이었다. [[카지미에시 4세]] 시기에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과 야기에우워 왕가는 가장 드넓은 영토를 자랑했고 아들을 통해 [[헝가리 왕국|헝가리]]-[[보헤미아 왕국|보헤미아]]를 별도의 왕국으로 다스리기도 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와 헝가리-보헤미아 전체를 단일 통치자가 다스린 적은 없었다. 야기에우워 왕가의 헝가리-보헤미아 왕국은 1490년에야 완성되었으며, [[러요시 2세]]가 [[모하치 전투]](1526)에서 [[오스만 제국]]군에게 전사하면서 2대 만에 단절되고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합스부르크 왕가]]로 넘어가게 된다. [[보헤미아 왕국]] 참조.] 러시아와의 전쟁을 말아먹으면서 동부 영토의 1/3을 날려먹고 말았다. 이후 중흥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발전하였고,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 시기에 단순한 [[동군연합]]이 아닌 단일 연합국가로 통합되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지그문트 2세 사후 개시된 선거왕 시대(1569-1795) 시기에 '''자유 선거'''(Wolna Elekcja)를 통해 [[안나 야기엘론카]]와 공동 군주로 선출된 '[[스테판 바토리]]'(Stefan I Batory, 1533-1586, 재위 1576-1586.)[* [[헝가리어]]로 '바토리 이슈트반'. 그 유명한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외숙이다. 이슈트반의 누나 언너가 에르제베트의 어머니이다.]는 [[그단스크]]의 반란을 철저히 진압하였다. 이 양반이 반란을 어떻게 진압했냐면, 6배의 그단스크 군(폴란드 군 2,000 vs 그단스크 12,000)을 거의 학살 수준으로 이겨버리고(그단스크 군 4,500명이 전사하고 5,000명은 포로) 다음으로 그단스크 장기 포위전에 들어가서 항복을 받아냈다. 다음으로 그는 과거 반역을 일으켰던 [[카자크]] 헤트만 사무엘 즈보로프스키도 참수하였고(...) 주요 귀족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그는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재상 '얀 자모이스키'(Jan Zamoyski, 1542 ~ 1604)의 지원을 받아 [[이반 뇌제]]의 [[루스 차르국]]과의 전쟁에서 승전, 동부 영토의 일부를 되찾았다. 이후 [[지그문트 3세 바사]] 치세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중요한 영토였던 [[스몰렌스크]]도 되찾았다. 지그문트 3세는 무능했지만[* 지그문트 3세의 관심사는 부왕 [[요한 3세(스웨덴)|요한 3세]]로부터 물려받은 [[스웨덴 국왕|스웨덴 왕위]]였고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그저 숙부 [[칼 9세]]에게 빼앗긴 스웨덴 왕위를 되찾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익보다는 개인의 사욕을 위해 움직였고 이때문에 폴란드-리투아니아 귀족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대신 그의 유능한 부하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지그문트 3세가 일으킨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고 덤으로 외국의 침략까지 격퇴해 내면서 폴란드의 위용을 계속 떨쳤다. 그 유명한 [[윙드 후사르]]의 활동 시기 역시 바로 이때의 일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해서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타라스 불바(역제: 대장 불리바)>에서, 불바를 위시한 자포로제 [[카자크]]들의 주적은 폴란드다. 폴란드 기병은 전투에 이골이 난 카자크들에게조차 강적으로 등장한다.] ||[[파일:Podział_administracyjny_I_RP.png|width=500]]|| || 163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최대 영역[* 다만 이 지도에는 고증오류가 있는데 연방 북쪽의 [[리가]]를 비롯한 [[리보니아]] 지역은 1629년 알트마르크 조약으로 [[스웨덴 제국|스웨덴]]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폴란드는 알트마르크 조약이 무효임을 주장하며 계속해서 리보니아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였으나 1635년 스웨덴과 슈툼스도르프 조약을 체결하면서 남동부 [[라트갈레]] 지역을 제외한 리보니아의 스웨덴 영유를 일시적으로 인정했고, 1660년 올리바 평화 조약으로 최종 포기했다.] || [[루스 차르국]]에서 [[혼란 시대|내란]]이 일어나자 적극 개입하여 루스 차르국의 [[차르]]를 바꾸기도 하였고, 1611년에는 클루쉬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모스크바]]까지 함락시켰다. 얼마 안 가 쫓겨나기는 했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그 영토가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뻗어있던 동유럽의 강국이었으며, [[합스부르크 제국]]과 함께 [[오스만 제국]]을 막아내는 [[가톨릭]]의 방패요, 유럽의 방파제였다. [[제2차 빈 공방전|1683년의 빈 전투]]에서는 폴란드군 윙드 후사르의 결정적인 돌격으로 승패가 결정되었다. 빈 전투의 승리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 침공을 좌절시켰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하필 리투아니아와 연합하고 있을 때가 전성기라서, 폴란드까들은 폴란드가 대단한 게 아니라 리투아니아의 도움 덕이라며 폄하하기도 하지만 이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리투아니아가 폴란드와 연합한 이유는 동쪽 [[모스크바 대공국]]의 압박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한 두 나라의 국력차를 고려할 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을 폴란드가 주도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게다가 리투아니아 왕이 폴란드 여왕과 결혼한 동맹 국가여서 리투아니아 귀족도 폴란드 귀족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문제는 반 폴란드 성향의 리투아니아 귀족들이 폴란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폴란드에서 군대를 일으켜 리투아니아 귀족들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실 [[리투아니아인]]들은 지금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마냥 전성기라고 좋아하진 않는다. 남유럽으로 치면 [[이베리아 연합]]이 형성될 당시 [[포르투갈 왕국]] 귀족들은 이를 기뻐했지만 훗날 포르투갈이 스페인으로부터 각종 차별을 받은 것 때문에 현대 [[포르투갈인]]들이 이베리아 연합 시절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포르투갈 독립 전쟁|포르투갈 왕국이 무력을 통해 스페인으로 독립한 것]]과 달리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러시아 제국|또다른]] [[프로이센 왕국|외세]][[합스부르크 제국|들]]에 의해 [[폴란드 분할|폴란드 왕국과 함께 멸망]]하여 자신들의 힘으로 폴란드로부터 독립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