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퐁 (문단 편집) == 한국의 경우 == 한국의 비디오 게임 역사도 퐁으로 시작했다. 1975년에 명동의 [[롯데미도파|미도파백화점]]에서 '''컴퓨터 TV'''라는 이름으로 퐁 클론 게임기를 판매하려고 전시한 적이 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12900099205016&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75-01-29&officeId=00009&pageNo=5&printNo=2741&publishType=00020|매일경제]]. 이것이 한국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도입된 비디오 게임기로 추정된다. 1970년대 전자 시계로 유명했던 [[오림포스전자]]에서 '[[오트론 TV스포츠]]'라는 이름으로 퐁 클론을 생산한 바도 있다. 또한 AVGN 퐁 게임 리뷰에 나오는 발리 6(홍콩판은 [[http://cafe.naver.com/paramsx/99821|패들 6]])이라는 물건 박스에 'Made in Korea'가 적혀 있다. 둘 다 로버츠(Roberts) 라디오사의 한국 OEM 생산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엔터(오락실)|엔터]] 신촌점이 지하 1층 / 지상 5층으로 2004년 처음 개업(WCCF 입하 된, 진짜 초창기 때)한 때 1대 있었다. 그러나 바로 사라져서 현재는 없다. 이렇듯 퐁 클론이 한국에 판매되었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 알았던 사람은 아주 적었다. 기기가 서울, 그것도 부유층이 애용했던 백화점에만 전시되었기 때문에 서울 사람들 중에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고, 가격이 너무 비싸 구입하는 사람은 더 적었다. 1970년대의 한국은 이제 TV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므로 백화점에 전시된 퐁 클론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다만 이 제품을 동전을 넣고 플레이하게 만들어 일부 대도시 지역의 유원지나 다방, 당구장 등에 비치한 경우가 있었다. 1976~1977년 경부터 20원을 넣고 즐겼다. 오리지널 퐁은 아니고 일본에서 살짝 변형한 형식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축구라고 불렀다. 당시 오락실은 축구(퐁) 게임 몇 대와 함께 기계식 게임기 몇 대를 들여둔 작은 규모였는데 기계식 게임기보다 퐁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퐁을 플레이할 수 있는 가게를 전자 오락실이라고 부르고 퐁을 전자 오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퐁이 유행하고 반 년에서 일 년쯤 지난 뒤에 50원을 넣고 즐길 수 있는 [[벽돌깨기]]([[브레이크아웃]])가 등장했고 다시 해를 넘긴 뒤에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등장하면서 비디오 게임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