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표절/의혹 (문단 편집) ==== 음악의 추상성과 감상자의 주관성 ====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의 경우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장르이므로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 따라서 스토리 전개 방식을 비교하면서 어째서 표절이고, 어째서 표절이 아닌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은 기본적으로 비언어적인 장르이다. 그나마 미술의 경우 눈에 보이는 형체가 있으니 별다른 설명 없이도 판단이 가능한 부분이 있지만, 음악은 형체가 없으므로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블락비]]의 곡 <빛이 되어줘>를 신인 가수가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자, [[지코]]는 음악 용어를 써서 '''표절이 아니다'''라고 오해를 풀어 주었다.[[https://entertain.v.daum.net/v/20160609103148955|#]] 쉽게 말하자면, 지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같은 [[화음]] 썼다고 다 표절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화음 종류를 떠올리면 된다. 피아노 연습곡에 나오는 반주라든가 가요를 피아노 연주용으로 편곡한 악보를 보면 반주가 다 거기서 거기인데, 같은 화음을 써서 그런 것이다.[[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60294&cid=47310&categoryId=47310|#]] 이처럼, 정작 당사자는 표절이라 느끼지 않는 것을 남들이 표절이라고 오해하는 것은 본래 예술 장르가 주관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사성의 기준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런 논란을 해결하려면 객관적인 팩트가 필요하며 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전문 용어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지코가 언급한 [[아르페지오]]라는 용어는 음악을 배워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음악 평론은 전문 용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상 비평에 그치고 만다. [[부활(밴드)|부활]]의 [[김태원(음악인)|김태원]]은 [[남자의 자격]]에 출연할 때, 남격밴드를 위해서 곡을 하나 작곡했었다. 그런데 이 곡을 들은 다른 출연 멤버가 '어디에서 많이 들어 봤다'고 태클을 걸었는데, 김태원의 대답이 압권이다. '''코드에 주인이 어디있어?!''' 코드가 유사하면 당연히 비슷한 느낌이 나는 게 당연한 건데, 음악에서 사용하는 코드 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아무 곡이나 가져 오면, 이와 동일한 코드를 사용하는 다른 곡을 얼마든지 찾아 주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유사한 곡들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 '장르'라는 언급을 했다. 사실 이렇게 보면 표절문제는 창작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들의 그룹을 지어 장르로서 분류하고, 음악의 정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생소함 때문에 금방 피로감을 느끼며 그런 창작자의 의도와 노력을 쉽게 폄하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들이 쉽게 감상할수 있는 단순한 음악들을 '표절'로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예시를 굳이 들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면 선입견에 사로 잡혀서 열심히 고민해서 만든 노래를 외면한다. 트로트 아니면 듣지 못하는 어르신들, 옛날 감성의 노래가 없다고 요즘 음악이 싫다는 불평들 모두 은근슬쩍 표절했을때 얻을 영광에 미끼를 던져넣고 있다. 좋은 음악을 위해 많은 장치들을 깔아놓고 복잡해진 음악만큼이나 한정된 수요에 사로잡혀 가난하게 예술을 해야하는 수많은 창작자들이 기존의 신념을 버리고 자기만의 고유의 음악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쫓아가겠다고 마음먹을때 표절을 향한 윤리는 가장 위태로워 진다. 그들이 그렇게 자기만의 음악을 해왔던 것은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표절이 위험한 이유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로 유명해졌을때 표절하지 않고 음악을 하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올라간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자기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창작자로부터 표절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음악적으로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발성법을 배우지 않고 성악이 불가능하고 화성코드를 모르고 작곡을 할수 없으며 클래식 악기를 쓰지 않고 클래식연주를 할수 없는 것처럼 모든 음악에는 유사성과 반복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음악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음악이 정말 모든 이들의 귀와 지갑을 열수 있었다면 좋겠으나, 안타깝게도 자원이 한정된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은 존재할수 없다. 올바른 의미의 창작은 그에 따른 고통이 항상 동시에 따라오는 반면에 그걸 거쳐도 온전한 사회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능력적 인정과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는 것도 장담할수 없다. 그럼에도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를 애써 창출해냈건만 그것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듯 외면 당한다면? 더이상 새로운 음악적인 재료나 레시피를 찾기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