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푸젠성(대만) (문단 편집) === 군정 시기 === [[타이완 섬]]에서는 200km 넘게 떨어져 있으나 [[중국]]에서는 '''눈으로 보일 정도'''의 거리(1.8~3km)[* 한강 폭의 약 1.8~3배]인지라 대륙이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완전히 점령된 후 사실상 타이완 섬의 위협을 막아줄 최후의 보루였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양안 간 [[전쟁]] 위기감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실제로 [[진먼섬]]에서는 진먼섬을 점령하기 위한 중국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진먼 포격전]]이 '''10년 넘게''' 벌어진 적도 있다. 1949년 [[국부천대]]가 이뤄지면서 중화민국의 푸젠 성 정부도 진먼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1956년부터 1992년까지 성 정부는 타이완 섬([[신베이|타이베이 현]] 신뎬)으로 옮겨놓은 채 그 기능을 간소화했고, 진먼과 마쭈 현지에서는 전지 군정(戰地軍政)에 들어갔다. 중앙정부에서 성 주석을 임명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많지 않았고, 의회도 없었다.[* 비교하자면 타이완 성은 타이완의 내정을 맡아 실질적인 기능을 했었고, 거수기로나마 민선 의회가 있었다.] 고등법원 또한 정식 고등법원이 아니라 분원을 두었다.[* 타이완성의 고등법원은 성 단위를 의식해 타이완 고등법원이 있고 대만 내 각 지역별로 분원이 있는 형태였는데, 푸젠성은 이 체계에 따르면 [[푸저우시]]에 푸젠 고등법원을 두고 지역별로 분원을 두어야 하겠으나 그럴 수가 없고 잔존 지역만으로 푸젠 고등법원을 두기에도 곤란한 점이 있어 (명목상으로는 푸저우에 소재한 푸젠 고등법원의 분원 형식인) 샤먼 분원을 진먼현에 두고 잔존 푸젠성을 관할지역으로 두었다. 명목상 소재지가 [[샤먼시]]라 명칭을 샤먼 분원이라고 하였으나 샤먼을 지배하지 못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1990년에 진먼 분원으로 개칭하였다. 이 체계 자체는 현대에도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미국]]은 [[장제스]]에게 대만만 먹고 여긴 버리라고 무던히 압박했지만 장제스는 완강히 거부했다. 중국도 무리해서 대만령 푸젠 성을 먹는다면 그것은 미국이 주장하는 두 개의 중국에 힘을 실어주는 빌미를 만들 것이며 대만령 푸젠 성의 존재가 국민당과의 접촉을 용이하게 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미-중 수교 이후 이 지역을 점령하기 위한 행동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