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풍계군 (문단 편집) == 생애 == 1783년([[정조(조선)|정조]] 7년) 2월 1일, [[한성부]]에서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는 형 [[상계군]]과 이창순, 이창덕 등이 있었다. 그의 유년 시절의 행적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고, 이후에도 《[[승정원일기]]》나 일성록에도 행적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1786년(정조 10년) 형 상계군의 추대 사건에 [[연좌제|연좌되어]] 온 가족이 [[강화도]]로 갈 때 같이 가서 성장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1812년([[순조]] 12년) 8월 [[사옹원]]봉사 박종일과 한광우 등이 역모를 꾸미다 발각당했다. 이때 은언군의 아들들 중 한 명을 추대하려 했다 하여 [[사간원]],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아 목숨이 위태로워졌다. 그러나 순조가 사건을 무마시켜 [[이성득(1775)|이성득]], 이철득, [[전계대원군|이쾌득]] 등 다른 이복형제들과 함께 [[사형]]당할 위기를 모면했다. 형 [[상계군]]의 문제도 있고 이런저런 역모 사건과 관련있기 때문에 핏줄만 [[왕족]]일 뿐 전혀 그에 걸맞게 예우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전에는 봉군되지 않았다. 그 어떠한 일체의 대외활동도 자제하며 조용히 살다가 [[스트레스]]로 인한 잦은 잔병치레로 인해 몸이 쇠약해져 1826년(순조 26년) 5월 8일 만 4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849년(철종 즉위년) 6월 23일 소의대부(昭義大夫)에 증작(贈爵)되었다. '풍계군(豐溪君)'이라는 군호가 언제 내려졌는지는 미상인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철종 즉위년부터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아마 증직될 무렵에 같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1851년에는 왕명으로 [[은전군]]의 양자가 되었는데 둘 다 죽은 뒤였다. 1858년 11월에는 정1품 현록대부(顯祿大夫)으로 다시 품계가 올라갔다. 묘소는 경기도 안산군 동막동에 자리잡았으며 나중에 경기도 과천군 남면 당정리(현재의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군포)|당정동]]) 은전군묘 근처로 이장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훗날 위치가 잊혀 찾을 수 없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