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풍석 (문단 편집) == 생애 == 풍석은 처세술이 뛰어나 여러 권세가들의 비위에 맞게 행동하여 결국 [[안제(후한)|안제]]의 총애까지 받아낸다. 안제는 풍석의 집으로 찾아와서 10여일 정도를 술을 마시면서 지내었는데 풍석에게 코뿔소의 가죽으로 만든 장식용 패검(佩劍)을 주었고, 검한자루와 자록색(紫綠色)의 허리띠와 더불어 옥(玉) 한 덩어리를 주었다. 이에 그치지않고 풍석의 아들 풍세(馮世)를 황문시랑(黃門侍郞)으로 임명 풍세의 동생들은 낭중(郎中)으로 임명하였다. 병란이 지속되어 각 봉지에서 [[조세]]가 들어오는게 적어지자 안제는 다른곳에 조세를 빼돌려 풍석의 조세로 사용하였고, 이에 풍석은 1년만에 쌀 3만 곡(斛)과 4만 전(錢)의 달하는 벌어들이게 된다. 풍석은 광록훈으로 임명되고, 얼마 안있어 124년 4월 5일에 [[태위]](太尉)가 된다. 125년 북향후 [[전소제(후한)|유의]]가 황제가 되자 4월 11일 태부(太傅)가 된다. 그리고 후임으로 태위가 된 [[유희(후한)|유희]]와 함께 녹상서사(錄尙書事)를 지내었다. [[순제(후한)|순제]]가 즉위하고 126년 1월 29일 태부에서 파직되었다. [[분류:후한의 태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