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라이토리아니 (문단 편집) == 유명한 근위대장들 == 제대로 임무를 수행한 야전사령관 출신의 충성스러운 근위대장들이나 파피니아누스, 울피아누스, 율리우스 파울루스와 같은 법학자 출신의 유능한 근위대장들도 있었지만, 대개의 근위대장들은 황제의 최측근들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대중들에게 유명한 근위대장들은 대부분 악인, 간신이나 권신으로 악명을 떨친 이들이 많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위에 언급했듯이 근위대장들은 정치군인으로 변질하기 매우 쉽고, 이렇게 정치군인이 된 자가 얌전하고 청렴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 * '''[[세야누스]]''': '''로마 제국 역사상 최악의 간신, 권신'''. 근현대학자들에게도 ''' '가장 파렴치하고 악랄한 로마인' '''이라고 불리며, 그 악랄함은 로마 전체 역사에서도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라고 평가받는다. 로마 공화정, 제정 프라이토리아니 역사상 최초로 지휘관 자격으로 자신의 권력을 악용했으며, 프라이토리아니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로마인들에게 제대로 각인시켰다. 따라서 [[연좌제]]가 흔치 않는 고대 로마에서 티베리우스와 원로원으로부터 숙청 후 [[기록말살형]]을 받고 그 일가는 집안 노예, 자유민 외에도 전처(前妻)와 그 일가까지 모조리 연좌제로 엮여 일족 전체가 역사에서 사라졌으며 세야누스 잔당 제거는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 [[마크로(근위대장)|마크로]]: 풀네임은 나이비우스 수토리우스 마크로. 세야누스를 몰락시키기 전 티베리우스가 임명한 인물로 티베리우스 재위 후반 ~ 가이우스(칼리굴라) 시대 초반까지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악랄함과 잔인함에 있어서는 세야누스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능가했다고 하며, 가이우스 즉위에도 일정부분 공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가이우스에게 [[토사구팽]] 당했고, 몰락 후 자살했다. * [[카시우스 카이레아]]: '''로마 제국 역사상 최초로 황제를 암살한 근위대장'''이다. 게르마니아 주둔 군단병 출신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친혈육 [[게르마니쿠스]][* [[칼리굴라]]의 아버지이자 [[클라우디우스]]의 형.] 아래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카이레아는 백인대장을 거쳐 프라이토리아니에 들어가 근위대장까지 오른 로마군 장교 출신이다. 41년 1월 자신이 모시던 가이우스 '칼리굴라'를 황궁에서 전차경기장이 통하는 통로에서 암살한 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문을 멸문시켰다. 황제 암살 전 유약한 황숙 [[클라우디우스 1세]]에게 황제의 명이라고 속여 그를 황궁에 가둔 뒤 황제를 암살했지만, 모든 프라이토리아니 대원들과 황제 경호를 직접 담당한 [[게르만족]] 친위대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알려져있다.[* 암살 직전 칼리굴라는 "나는 살아있다"를 외치며 노예들과 함께 저항했는데, 이를 들은 게르만 친위대가 "황제를 보호하라"라고 외치며 합류해 황제를 살해한 카이레아 부하들과 가담된 것으로 추정된 원로원 의원, 관료 몇 명을 죽였다고 한다.] 칼리굴라 암살 이후, [[밀로니아 카이소니아]] 황후와 유아에 불과한 율리아 드루실라 공주를 모두 살해한 다음, 유폐시킨 황숙 [[클라우디우스 1세]]를 인질삼아 근위대 병영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클라우디우스는 도착 직후 황제로 선포되자마자 충성하사금을 내리며 9개 대대의 지지를 얻게 됐고 동료 클레멘스는 그를 체포했다. 이후 클라우디우스 1세 밑으로, 칼리굴라의 부하들과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지지자들이 집결한 이후 클라우디우스가 명을 내려 황제 암살 혐의를 적용받아 부하들과 함께 처형됐다. 이때 카이레아는 부하들과 함께 끝까지 암살 배후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며, 카이레아는 다른 암살자들과 달리 반역죄 외에도 가족법까지 적용된 다음 사형에 처해졌다.[* 불명예스럽게 처형된건데, 카이레아에게 가족법이 적용된 이유는 그가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도움 아래 출세한 클리엔테스이기 때문이다.] * [[섹스투스 아프라니우스 부루스]]: [[네로]]의 모후 [[소 아그리피나]], 친구 [[세네카]]와 함께 궁정 쿠데타로 네로를 옹립한 근위대장, 네로 초기의 권신이다. 왼팔이 없었다고 하며, 클라우디우스 1세 생전 아그리피나의 도움으로 근위대장이 되었다. 소 아그리피나와 권력투쟁을 벌여 승리 후 친구 세네카와 환상의 콤비를 결성하여 많은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초창기 네로가 성인 이후 통제불능이 되는데 기여했다. * '''[[티겔리누스]]''': 세야누스와 함께 악랄하고 파렴치한 로마인이 언급될 때 항상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 동시대, 후대 역사가들에게 '''[[악마]]같은 파렴치한 천재'''로 불렸다. 매우 비천한 출신이었는데 네로의 오랜 친구였던 이유 때문에 부루스 사망 후 근위대장이 됐으며, 네로의 악행을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한 간신으로도 악명을 떨쳤다. 근위대장 이전부터 네로의 첫 부인 [[클라우디아 옥타비아]]를 비롯해 황태후 아그리피나 살해에 가담한 것으로 유명하며, 근위대장 취임 후 정적 제거를 위해 증거조작, 고문을 직접 실행에 옮겼다. 따라서 네로의 사촌형이자 동서 파우스투스 술라 펠릭스, 처형 클라우디아 안토니아 살해에도 직접 개입했고 네로에게 여러 인사 숙청명령을 지시받고 이를 직접 지휘했다. 또 그는 로마 대화재 당시 [[기독교]] 탄압에도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그는 네로가 [[코르불로]] 장군에게 자살을 명령한 편지를 직접 전달한 사람이기도 하며, [[피소 음모]] 당시 [[세네카]]를 비롯한 로마 내 유명인사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해 고문하고 죽였다.[* 심지어 자신과 함께 프라이토리아니를 통솔한 공동 근위대장 루푸스까지 체포해 고문 후 처형시켰다.] 네로 아래에서 프라이토리아니를 악랄하게 지휘했으며, 네로와 함께 악랄한 행동을 멈추지 않아 로마인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네로 몰락 전 동료 근위대장 님피디우스 사비누스와 함께 도주했다가 갈바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잠시 잠적 후 부하들과 함께 원로원 편에 섰다. 이후 [[오토]] 편에 가담하려고 뇌물을 썼지만, 실패하자 69년 면도칼로 목을 스스로 찔러 자살했다. * [[가이우스 님피디우스 사비누스]]: 네로 시대의 후반기 당시 티겔리누스의 새로운 파트너로 악명을 떨친 근위대장. 황제를 꿈꾸며 스스로를 '''"나는 칼리굴라의 [[사생아]]다."'''고 해서 한때 논쟁이 있기도 했다. [[검투사]] 아버지와 그리스인 자유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외조부는 칼리굴라에게 자유를 얻은 그리스인 해방노예 가이우스 율리우스 칼리스투스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네로 사후 자신을 외조부의 옛 주인 칼리굴라의 사생아로 주장했다. 아내는 네로의 아내 중 해방노예였던 스포루스였다. 그는 동료 티겔리누스와 함께 네로를 버리고 원로원 편에 서면서 네로가 자살을 결심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다. 네로 몰락 후 갈바를 지지했기에 권세를 유지했지만, 결국 황제가 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68년 부하들에게 살해됐다. 반란 당시 스스로를 [[칼리굴라]]의 사생아로 자처했지만 애당초 거짓말이라서 호응을 얻지 못했다. * [[티투스]]: 부친 [[베스파시아누스]] 즉위 후 후계자로 있으면서 근위대장을 역임하고 베스파시아누스 사후 황제로 등극했다. * [[푸블리우스 아킬리우스 아티아누스]]: [[트라야누스]]의 동향 친구로 트라야누스 시대에 근위대장을 역임했으며 트라야누스의 친척인 [[하드리아누스]]의 후견인이기도 했다. 트라야누스가 파르티아 원정 중 병사하고 황후 [[폼페이아 플로티나]]가 [[하드리아누스]]를 황제로 택군하자 하드리아누스의 경쟁자이던 명장 [[루시우스 퀴에투스]]를 비롯한 하드리아누스에게 적대하던 전직 집정관 4명을 암살하고, 하드리아누스는 모르는 일이었고 모두 자기의 과잉충성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오명을 뒤집어썼다. 근위대장에서 사임하고 원로원 의원이 되어 여생을 조용히 살았다. * [[페렌니스]]: [[콤모두스]] 시대의 근위대장이자 권신. * [[클레안데르]]: 페렌니스의 뒤를 이어 근위대장에 발탁된 해방노예. 그나마 국정 운영 능력은 있었던 페렌니스와는 달리 행정을 마비시켜 혼란을 초래하였다. *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라이투스]](아이밀리우스 레토): 아프리카 속주[* 오늘날의 [[북아프리카]]] 출신.[* 공화정 말 [[레피두스]]에게 시민권을 받은 북아프리카인의 후손이므로 같은 속주 출신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달리 이탈리아 혈통 로마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속주 출신인 세베루스가 콤모두스 시대때 승진하는 것에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콤모두스 재위 말 단독 근위대장을 시작으로 프라이토리아니를 이끄는 동안 '''황제 2명을 제거했고, 2명을 권좌에 올린 권신'''이자 '''황제 자리를 경매를 통해 돈을 받고 판 근위대장'''으로 악명을 떨쳤다. 콤모두스 암살에 가담했으며, [[페르티낙스]]에게 처음 접근해 콤모두스 암살 소식을 알리고 그를 제위에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새 황제와 갈등을 빗다가 자신이 올린 페르티낙스 황제를 암살했으며, 이후 부하들과 함께 황제 자리를 경매 방식으로 돈을 받고 팔았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명으로 처형됐다고 알려져 있다. *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 세야누스, 티겔리누스, 님피디우스 사비누스, 페레니스, 레토와 함께 나쁜 쪽으로 유명하다. 악랄함과 잔인함, [[부정부패]]로 악명을 떨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의 근위대장, 권신으로 악명은 세야누스, 티겔리누스, 레토와 비슷할 정도였다고 한다. 세베루스 황제의 외사촌이자 동향 친구로 [[카라칼라]]의 장인이기도 했지만, 사위에 의해 반역 혐의로 제거됐다. * '''[[파피니아누스]]''' : 로마 제국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세베루스 왕조]] 시대의 법학자, 변호사, 원로원 의원이자 근위대장.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오랜 친구로 [[율리아 돔나]], [[율리아 마이사]] 자매의 친척이기도 하다. 세베루스 왕조를 대표하는 법학자 출신 근위대장 3대장 중 한 명이다. 서구권에선 울피아누스, 폴이라고 불리는 율리우스 파울루스와 함께 로마법 분야에서 그 명성이 대단하다. 당대부터 [[로마법]] 분야에 있어 가장 위대한 법 전문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만큼,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법전을 만들면서 로마 제국의 법학자 5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고, 오늘날 법학자들에게도 명성이 대단한 로마 역사상 최고의 법학자다. * [[마크리누스]]: 북아프리카 출신의 [[무어인]]이다. 217년 선동을 일으켜 [[카라칼라]] 황제를 암살하고 제위를 찬탈해 즉위했다. * [[울피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시대 때 활약한 법학자 출신으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의 근위대장으로 있었다. * [[율리우스 파울루스]]: 흔히 '''폴(Paul)'''이라고 불리는 로마법 학자로, 동시대 로마인과 후시대 로마인 모두에게 "최후의 위대한 법학자"로 찬사를 받았던 사람이다. 로마 형벌을 다룬《형법》[* [[화형]], [[교수형]], [[십자가형]] 등을 소개하고 있는 고대 서양의 대표적인 형법서이다.]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무죄추정의 원칙]] 등 그가 자신의 저서들에 정리해 언급한 각종 로마법 원칙들이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때의《[[로마법 대전]]》곳곳에 인용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테오도시우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공동 발표한 [[로마법]]에도 로마 역사상 가장 권위있고 위대한 법학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됐다.] [[세베루스 왕조]]의 창건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그 후계자 카라칼라 아래에서 판사로 명성을 날렸다고 하며,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 아래에서 228년~ 235년까지 프라이토리아니를 이끌었다. * [[비탈리아누스]]: 3세기 [[군인 황제 시대]]를 개막시킨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근위대장이다. 동시대 사가 헤로디아누스의 증언에 따르면,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밑에서 로마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로마 내 정보를 전선에 있는 황제에게 전달하는 연락책 담당도 했다고 한다. 따라서 [[고르디아누스 1세]]와 [[고르디아누스 2세]]가 황제를 자처하고, [[원로원]]이 두 사람을 추인했을 때 일부 병사들에게 암살됐다. * [[티메시테우스]] : [[고르디아누스 3세]]의 [[외척|장인]]이자 [[권신]]이다. [[레반트]] 출신의 그리스계 로마인으로 행정 관료를 지내며, [[세베루스 왕조]]의 [[율리아 마이사]], [[율리아 마마이아]]의 금고지기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가 시해된 이후, 문맹인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쪽에 붙어 막시미누스의 군자금을 그리스, 소아시아의 폰투스 일대에서 수탈하고 추가 세금까지 징수하는 일을 담당했다.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 즉위 후,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몰락하자 계급이 강등당하고 함께 몰락했지만 [[갈리아]]에서 [[권토중래]]를 노렸다. 그는 인맥과 갈리아 내 유력자들의 도움으로 [[고르디아누스 1세]]의 딸, [[고르디아누스 2세]]의 여동생 [[안토니아 고르디아나]]가 주도한 것으로 추측되는,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 처형 사건 이후 로마로 복귀한다. 이후, 고르디아누스 3세의 근위대장이 되어 권력을 장악했고, 소년황제의 보호자를 거쳐 황제의 장인이 되어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다. 근위대장 취임 이후, 상당히 훌륭한 섭정이었음에도 벌인 행적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권신으로 행동했다. 그는 고르디아누스 3세의 어머니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 후, 같은 속주 태생의 [[필리푸스 아라부스]] 형제 등과 내각을 꾸려 완벽하게 권력을 장악한다. 그 다음 그는 [[아퀼레이아]] 공성전에서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에게 도륙날 뻔한 국가를 구한 장군, 원로원 의원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처형한 다음 [[기록말살형]]을 내렸는데, 이와 별개로 서방에서는 연공금 협상에서 실수를 하고 지진으로 여러 도시들이 피해를 입는 와중에 무책임한 행동을 벌이기도 한다. 티메시테우스는 고르디아누스 3세와 자신의 확실한 입지, 페르시아의 계속된 위협에 맞서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계획해 동방으로 떠난다. 이때 그의 지휘 아래 로마군은 계속 승리했는데, 원정 중 그곳에서 갑작스레 병사한다. * [[율리우스 프리스쿠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 또는 [[베두인]]족 출신이다. 필리푸스 아라부스의 [[동복형제|동복친형]]으로 티메시테우스와 함께 고르디아누스 3세 휘하의 근위대장을 맡았다. 티메시테우스, 동생 필리푸스와 함께 고르디아누스 3세 내각을 이끈 시리아 속주 태생 3인방 중 한 명으로 프라이토리아니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사람으로 추정된다. 티메시테우스가 급사하자, 고르디아누스 3세에게 동생 필리푸스를 후임으로 추천했고 동생이 황제가 된 이후에도 권세를 휘둘렀다. 시리아에서 일어난 [[마르쿠스 요타피아누스]]의 반란 사건 원인 중 하나인 무리한 세금 징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 [[필리푸스 아라부스]]: 별명처럼 [[로마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 또는 [[베두인]]족 출신이다. [[고르디아누스 3세]]를 암살 또는 혼전 중 전사에 관여했다고 전해지나, 현대 이후 연구에서는 고르디아누스 3세 정권의 핵심 인사 중 프라이토리아니 내 권력 서열 2위 정도의 행정 관료로 해석되고 있다. 고르디아누스 3세가 사산왕조 페르시아와의 전투 중 전사(또는 암살)한 이후 제위에 올랐다. * [[수케시아누스]]: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휘하 근위대장으로, '''[[로마 제국]] 역사상 최초로 포로가 된 황제와 함께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포로가 된 근위대장이다.''' 역대 근위대장 중 [[아우렐리우스 헤라클리아누스]]와 함께 야전군 사령관, 수비군 사령관으로도 상당히 능력 있던 장군 출신 근위대장으로, [[권신]]이나 [[악인]]이 아닌 전형적인 '''장군형 근위대장'''이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와 마찬가지로 페르시아 영내에서 [[포로]] 생활 중 [[홧병]]으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아우렐리우스 헤라클리아누스]]: [[갈리에누스]] 황제의 치세 후반 근위대장으로, [[발레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발탁된 일리리아계 로마군 야전사령관으로 유명하다. 성씨인 아우렐리우스에서 드러나듯 [[카라칼라]] 황제의《안토니누스 칙령》으로 [[로마 시민권]]을 받았던 사람으로, 프라이토리아니를 맡기 전까지는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아우렐리아누스]], [[프로부스]]와 함께 [[로마군]] 야전사령관으로 매우 뛰어난 장군으로 명망 높았다. [[갈리에누스]]와 황제의 동생 소 발레리아누스를 [[밀라노]]에서 암살했고, 곧 자살했다. * [[카루스]]: [[원로원]] 의원이기도 하며, 근위대장 출신 황제 중 전임자 암살에 관여하거나 사주하지 않고 즉위한 인물이기도 하다. [[프로부스]] 황제가 병사들의 폭동으로 암살되자, 이를 수습하고 즉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