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시느 (문단 편집) == 모티브 == 모티브는 대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딸인 [[프랜신#s-2|프랜시느 데카르트]]다.[* 작가 본인이 데카르트의 딸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트위터로 직접 인증했다. [[https://twitter.com/ufujitakazuhiro/status/37066410626654208|작가 트위터]] ]데카르트는 그의 하녀인 헬레나 얀스와 사귀었었는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프랜시느 데카르트로, 결국 헬레나와 데카르트가 종교 문제로 결혼하지 않게되며 혼외자가 된다. 당시에는 혼외정사 자체가 금기였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프랜시느를 조카라고 둘러댔다고. 그렇지만, 딸과 헬레나에 대한 사랑은 엄청나게 깊었고[* 데카르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헬레나를 기억했다.]프란시느가 수태된 날짜(1634년 10월 15일)를 일기에 기록했기 때문에 친딸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홍길동전|더 후 시기 모 소설의 어떤 아버지랑은 다르게]]--[* 다만, 이 경우는 혼외자는 맞지만 데카르트처럼 아예 결혼을 안한 상태의 혼외자가 아니라 외도로 인해 생긴 [[서자]]다.] 1640년, 데카르트는 프란시느를 프랑스로 데리고 가서 교육을 받게 할 것이라고 기록한다. 하지만 프란시느는 동년 9월 7일,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성홍열에 걸려 세상을 일찍 뜬다. 데카르트는 친구가 자신의 가족을 여의었을 때, 영혼 불멸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을 말해 가면서 꿋꿋이 슬픔을 참고 이길 것을 간곡한 편지로 써 보냈지만, 바이예에 의하면 데카르트는 프란시느가 죽은 후 몇 날 며칠을 서럽게 울었다 한다. 소문으로는 데카르트가 생전 프란시느의 모습을 빼닮은 자동인형을 제작해서 전 유럽을 여행할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고 하며, 프란시느는 여기서 모티브를 따만들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