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로방스 (문단 편집) == 역사 == [include(틀:프랑스 왕국의 행정 구역과 군구)] [[파일:님 프랑스.jpg]] 나르본과 [[마르세유]] 사이 님의 로마 신전 메종카레(Maison Carrée)[* 원래는 [[아폴론]]을 섬기는 신전으로 [[기원전 19년]]에 착공 16년에 완성하였다. [[4세기]] 이후으로는 [[가톨릭]] [[성당]]으로 변하였고 [[프랑스 혁명]] 이후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당연히 들어갈 수 있지만,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 신전 내부에서 정해진 장소 외에는 견학할 수 없다.] 프랑스 남동부에 있으며, [[기원전 2세기]]경 [[고대 로마]]의 [[속주]]인 갈리아 나르보넨시스(Gallia Narbonensis)[* 여기서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일부도 포함했다.]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라틴어]]로 속주를 프로빙키아(Provincia)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그대로 지명이 된 케이스. [[식민지]]를 가리키는 콜로니아가 지명이 된 [[쾰른]]과 비슷하다. 옛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에 속해있는 동안 [[켈트]]족과 [[그리스인]], [[페니키아]]인들이 정착했다. [[기원전 6세기]] 때 [[고대 그리스|그리스]]에서 [[마르세유|마살리아]]에 식민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현재도 프로방스 지방 인구의 약 4퍼센트 정도에서는 [[그리스]]와 [[페니키아]] 유전자가 발견된다고 한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남부 해안 지방은 의외로 갈리아(현 프랑스 지역)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로마에 복속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붕괴되면서 이쪽으로 남하한 게르만족의 일파인 [[부르군트족]]이 세운 [[부르군트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533년]] [[프랑크 왕국]]이 부르군트 왕국을 병합했다. 그러나 이 통합은 프랑방스의 남부 해안 지방을 제외한 불완전한 통합이었다. 프랑방스 남부 해안 지역은 [[736년]] [[카롤링거 왕조]]의 [[피핀 3세]]에 의해 [[프랑크 왕국]]에 병합되었다. [[카롤루스 대제]] 사후 프랑크 제국이 분열되면서 프로방스는 부르군디아(부르군트)의 일부로서 중프랑크에 속하게 된다. [[로타리우스 1세]]의 삼남인 샤를은 프로방스의 영주가 되나 얼마 못가 후계자 없이 [[864년]]에 죽었다. 이후 [[중프랑크 왕국]]이 북이탈리아로 제한되면서 부르군트 지방은 각각 프로방스 지방을 중심으로 한 저지 부르군트와 이북 지역인 고지 부르군트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그러다가 제2차 부르군트 왕국으로 통일했다. 이후 프로방스 지방은 부르군트 왕국 내에서 프로방스 백작령이 되어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가지게 되었다. 프로방스 백작령은 지난 역사에서도 그렇지만 부르군트 왕국 내에서 비교적 독자성이 강한 편이었고 규모 또한 컸기 때문에 부르군트 왕국에서도 비교적 독자적인 세력을 가질 수 있었다. [[1032년]]부터 부르군트 왕국이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당시 봉건제 하의 여러 영지와 마찬가지로, 주변 여러 영향력 있는 가문이 프로방스 백작가문과 혼인 등을 통해 프로방스 백작령과 동맹 관계를 맺었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로베르 2세]]는 프로방스의 백작의 딸 콩스탕스와 결혼했다. [[1112년]]에는 프로방스 백작 가문의 남자 혈통이 끊기면서 딸인 Douce가 여(女)백작이 되었고 그녀와 혼인을 맺은 [[아라곤 왕국]]의 바르셀로나 가문이 이후 [[1246년]]까지 프로방스 백작을 겸하게 되었다.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도 프로방스 백작의 딸 엘리너와 결혼했다. [[1246년]]에는 프랑스 [[카페 왕조]]가 이전 바르셀로나 가문과 마찬가지로 결혼 동맹을 통해 프로방스 백작을 겸하게 되었고 이로서 프로방스는 프랑스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방스는 공식적으로 제2 부르군트 왕국에 소속되어 있었고, 부르군트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구성 왕국이었기 때문에 [[1246년]] 이후에도 프로방스는 공식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고, [[프랑스 왕국]]에 속하지는 않았다. [[루이 11세]] 때인 [[1481년]]에 양도되어 프랑스령이 되고, [[1486년]]에는 완전히 프랑스에 흡수되지만, 지방의 [[삼부회]]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1600년대]] 전반까지 독립해 있었다. [[1536년]]에 [[카를 5세]]가 침공한 적이 있다. [[루이 18세]]가 왕이되기 전에는 프로방스 백작의 칭호로 불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