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메이슨 (문단 편집) == 그리스도교와 프리메이슨 == [[가톨릭]]은 아직도 프리메이슨에 가입하는 것을 정당한 형벌로 처벌되어야 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1월 25일에 반포한 새 [[http://www.cbck.or.kr/Documents/Canon|교회법전]] 제1374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 1374 조 교회를 거슬러 음모하는 단체에 가입하는 자는 정당한 형벌로 처벌되어야 한다. 또 이러한 단체를 조장하거나 주관하는 자는 금지 제재로 처벌되어야 한다.[* 1917년 반포된 [[http://www.jgray.org/codes/cic17lat.html|구 교회법전]]에는 프리메이슨이라고 명시적으로 나와있었으나, 새 교회법전에서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담기 위해 위와 같이 바뀌었다.] 1917년에 공포된 구 교회법전과는 다르게 1983년에 공포된 새 교회법전에서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으로 기술하고 있어서, 성직자를 또는 수도자들에게만 귀속되는 특별 처벌에 관한 언급이 없고, 사도좌에 유보된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 새 교회법전은 이러한 단체에 단순 가담한 자(정당한 형벌로 처벌)와 이러한 단체를 조장하거나 주관하는 자(금지제재로 처벌)로 나누고 있다. 둘 다 명령적 형벌(1344조)이고, 미확정적이면시(1349조), 선고 처벌이다. 선고 처벌이므로 주교가 파문을 선고할 수 있다. 실제로 링컨 교구의 페이비언 브루스키위츠(Fabian Bruskewitz) 주교는 1996년 [[https://www.catholicculture.org/culture/library/view.cfm?recnum=2863|성명]]을 통해 1개월 이상 프리메이슨이나 교회를 거슬러 음모하는 단체에 소속될 경우 선고 처벌의 파문을 당하게 될것이라고 경고하였고, 이들은 파문당하였다. 교황청은 파문을 [[https://www.thebostonpilot.com/articleprint.asp?id=5150|지지]]하였다. 또한 필리핀천주교주교회의는 2003년 [[https://www.ucanews.com/story-archive/?post_name=/2003/01/31/bishops-decree-excommunication-for-catholics-remaining-freemasons&post_id=21936|선언]]을 통해 "프리메이슨 정신을 고수하는 신자는 교회법 1364에 의해 자동 파문 된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1983년에 반포된 새 교회법에서는 프리메이슨에 관한 명시적인 조항이 삭제되었지만, 1983년 11월 26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documents/rc_con_cfaith_doc_19831126_declaration-masonic_lt.html|'프리메이슨 단체들에 관한 선언']]을 통해 "프리메이슨 단체들에 속하는 충실한 지지자들은 대죄상태에 있으므로 [[영성체]]를 하지 못합니다." 라고 밝혔다. 이런 정책에는 역사적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19세기]] 들어 꾸준히 세력을 확장해나가던 프리메이슨의 기본적인 사상 조류였던 계몽주의 철학에 따른 [[이신론]](理神論) 성향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서유럽]]과 [[미국]] 등지에 확산되면서 반(反)[[사제(성직자)|사제]]주의와 함께 반(反)가톨릭 운동으로 전개되었고, 가톨릭 교회와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프리메이슨의 이신론은 종교 상대주의를 내세워 국가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삽입시키는데 한 몫을 했는데, 이 때문에 가톨릭의 교세가 위축된 점도 크다.[* 근대 유럽에서 계몽주의자들에 있어서 가톨릭은 [[까야 제맛]]으로 통했을 정도로 취급이 안 좋았고, 중세 유럽을 암흑시대라고 부르며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했다. 다만 가톨릭이 암흑시대를 부른 만악의 근원이라는 사조는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부정되고 있다. 이 부분이 자세히 궁금하면 [[중세]] 항목을 참조하자.][* 다만 중세=암흑기=그 원흉은 가톨릭 식의 단순한 도식이 부정된 것과는 별개로 오히려 프리메이슨의 성장기이자 전성기였던 근세 말~근대 기준으로 보면 가톨릭 교회가 '''명확하게''' 반 계몽주의 및 반 근대주의/반 진보적 입장을 취해온 것은 사실이다. 즉 중세의 가톨릭은 통념과는 달리 그렇게까지 억압적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지식의 축적과 학문의 발전에 공헌해온 바가 상당하지만 근세~근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민주주의나 공화주의, 종교의 자유와 세속국가화, 신분제 폐지 등 새로운 사회 질서에 강경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왔다는 것. 즉 근대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이 가톨릭을 까야 제맛 취급한 것이 꼭 중세에 대한 부족한 이해 탓은 아니었고, 당장 근세~근대 당대에 계몽주의자들과 격렬히 충돌하며 [[앙시앵 레짐|구질서]]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에 기인한 바도 크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도 대단히 도식적인 이해로, 근대 초기 상황은 훨씬 더 복잡했다. 계몽주의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당시 체제를 부정하고 공화주의나 혁명을 옹호한 것도 아니었고, 가톨릭이라고 해서 무조건 반계몽주의, 반진보를 취했던 것도 아니다. '가톨릭 계몽주의(Catholic Enlightenment)'라는 학술용어가 왜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하는데, 가톨릭에 비판적인 의견들은 무조건 '역알못의 도식적인 이해' 취급하며 가톨릭의 긍정적 특성만을 강조해야 올바른 이해를 가진 것처럼 오도하는 이런 관점이야말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 계몽주의를 이야기 할 것이라면 당장 교황 [[요한 23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근대의 가톨릭에서 근대주의자(modernist)라는 개념 자체가 명백한 비하와 의심의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근대 유럽의 정치사에서 가톨릭 교회가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통해 근대성, 세속화, 민주주의 및 공화주의에 맞서는 왕당파 및 구체제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것도 생각해 보자. 물론 가톨릭 교회는 근대 기준으로도 수억(현대 기준으로는 수십억)의 신도를 가진 거대한 집단이고, 계몽주의자들 역시 그 못지 않게 거대하게 성장하여 영향력을 확보한 집단이니 그 구성원 중에는 자기 집단 주류와 이질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질적 구성원의 존재만으로 주류적 입장을 부정하는 것은 무리수인 것. 단적인 예로, 미국 공화당의 중도파(공화당 내 진보파) 정치인 중에는 미국 민주당의 중도파(민주당 내 보수파) 정치인보다 더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인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런 일부 인물들이 있다는 이유로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을 단지 도식적인 이해라고 비하하지는 않는다.] 가톨릭 측에서는 이들을 나쁘게 볼 수 밖에 없다. 특히 가톨릭 내 보수파 일각에서는 자유주의(신학적 의미든 정치적 의미이든)나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또한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도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며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다만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레벨이면 같은 보수파 신자 속에서도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다.[* 이 문서에서도 프리메이슨의 긴 역사와 보수성을 여러 번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프리메이슨보다 훨씬 역사가 길고 보수성이 강한 조직이 바로 가톨릭 교회다. 예를 들어 현대(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의 가톨릭에서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소수파로 전락한 상태이지만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서는 안 된다>, <가톨릭 교회가 금지한 책(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나 다른 종교에 대한 책, 또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위배되는 사상이나 과학적 연구결과를 다룬 책 등)을 읽거나 가톨릭 교회가 지지하는 정당(주로 보수정당이거나 군주제를 지지하는 정당, 종종 극우 파시즘 정당) 이외에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행위는 교회법상 범죄로써 최대 파문까지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가톨릭 교회가 이런 입장을 본격적으로 포기한 기점이 바로 1962년~1965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였다. 그리고 60년대면 이미 프리메이슨 역시 슬슬 쇠퇴기에 접어들 무렵이다. 즉 근세~근대의 절정기 내내 두 조직은 서로 명백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정치사회적으로 격렬하게 충돌하는 관계였던 것. 프리메이슨이 자유주의 개신교 종파들가 가까운 사이인 것 역시, 단순히 적의 적이니 친구라는 수준의 얄팍한 교류가 아니라 양쪽 모두 근대 계몽주의와 근대 자유주의(현대 기준으로 보면 보수적 자유주의 및 신학적 자유주의)의 영향력 아래에서 나타났기에 서로 뜻이 맞는 바가 많아 자연스럽게 벌어진 현상인 셈. 물론 20세기 중후반 이후 '가톨릭 교회는 사회와 국가가 세속주의화 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프리메이슨 역시 진보적 개혁주의 세력이라는 정체성이 크게 희석' 되면서 양자가 대립해야 할 이유 자체가 크게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근대 내내 치열하게 대립해왔던 역사적 경험이 한순간에 사라질수는 없고, 가톨릭 역시 종교 조직이라는 특성상 필연적으로 보수성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종교 조직의 정체성은 수백년간 누적되고 발전되어온 '교리'에 의해 형성되고, 교리는 곧 종교적 진리와 연결된 것이므로 사회가 변화했다고 교리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당장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대놓고 반대하는 [[성 비오 10세회]] 계열 세력을 생각해보자.) 프리메이슨 역시 가톨릭 교회만큼은 아니라도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조직으로서 그 정체성을 하루아침에 뒤집을수는 없기에 <이전까지 대립해왔던 관성에 따라> 대립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측면이 있다. 당장 후술된 것처럼 프리메이슨을 명확하게 가톨릭 교회와 양립할 수 없다고 명시한 교황 교지가 몇건씩이나 있는 상황에서 후대 교황이라고 해도 '선대 교황의 교지가 이젠 무효다' 라고 철회하여 교황과 바티칸, 가톨릭의 권위를 무너트리기는 쉽지 않다는 것. 차라리 [[교회 일치 운동]] 같은 거야 '분열되었던 교회의 재통합'이라는 강력한 대의가 있으니 약간 체면이 구겨지더라도 양보하고 입장을 철회할 동력이 있겠지만 프리메이슨과의 대결 종식에는 그런 대의도 없으니 관성적 대립의 영향력이 계속 이어지기 쉬운 상황인 것.] 이에 1738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이신론을 정죄하는 한편, 가톨릭 신자가 프리메이슨에 가입하는 것을 금했으며, 1892년 교황 [[레오 13세]]는 프리메이슨을 [[적그리스도]]라고 대놓고 거론하며 '하나에 가입함은 다른 것과 결별하는 것' 이라는 불구대천지 원수격의 매우 강경한 교지를 내렸다. [[https://blog.daum.net/truekorean/8143463|프리메이슨의 지령]] 1917년에 나온 교회법에서도 프리메이슨을 가입하면 자동 파문이라는 내용이 남았다. 흥미로운 것은 당대의 프리메이슨은 일종의 종교조직에 공동체 조직이라 [[사립학교]][* 이른바 [[아이비리그]] 학교들이 이쪽 관련해서 커넥션이 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는 물론 상호부조[* 일종의 [[계]]]와 [[https://ko.wikipedia.org/wiki/신용조합|신용조합]]을 설립했고, 가톨릭의 대처 역시 그에 대응해 맞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방식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각종 대학 등에서 가톨릭과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상당 수의 대학들이 프리메이슨 아니면 [[가톨릭 교회]](특히 [[예수회]] 계열)의 지원을 받아서 지어졌다. 제3자적 입장에서는 세속에 대한 영향력이 쇠퇴해 가던 가톨릭의 대응을 다룬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대에는 그만큼 심각한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가톨릭이 다시금 영향력을 회복하면서[* 정확히 말하면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가톨릭은 기존의 강경한 보수적 정치색과 세속적 영향력의 상당부분을 포기했고, 그 반작용으로 종교적 영역에서의 영향력을 상당부분 회복한 것이다.] 프리메이슨과의 군비경쟁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 신학 진영을 비롯한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들은 프리메이슨과 가톨릭을 즐겨 엮는다. 이들은 프리메이슨을 극딜하며, 종말론을 설파하려고 프리메이슨 음모론까지 끌어들이기도 한다. 프리메이슨이 교황의 하수인이라거나 반대로 교황이 프리메이슨의 하수인이라거나. 반면에 가톨릭 계열 중에서도 [[교황 공석주의]]자들[* [[전통 가톨릭]] 강경 보수파로 전부 이교이다.]은 현대 가톨릭 교회나 교황을 프리메이슨에 포섭된 타락한 교회로 보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의 극단적 보수주의자들도 개신교 전체를 프리메이슨으로 매도하기도 하니 [[도긴개긴]]. 한편 [[정통주의]] 신학의 세가 강한 한국 개신교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프리메이슨을 나쁘게 보는 편이지만[* 애초에 자유주의 신학의 이신론은 (신)정통주의에서 극혐하는 요소이다.] [[근본주의]] 측의 프리메이슨이 [[가톨릭]]과 함께 세계를 지배한다는 음모론 또한 허튼 소리로 치부한다. 정통주의와 [[신정통주의]] 신학의 득세로 프리메이슨의 기반인 보수적 자유주의 신학이 크게 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정통주의와 신정통주의는 근거가 부족한 음모론을 이단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한국에도 예외가 없다. 여호와의 증인은 20세기에 시작한 신흥단체로, 1878년 찰스 테이즈 러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 목사가 설립한 파별에서 비롯되며,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 연구생(Bible Students)이라 불렸다. 현대 여호와의 증인을 비판하는 복음주의 평론가들은 종종 여호와의 증인이 프리메이슨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러셀 목사 역시 프리메이슨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그 어떤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를 입증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러셀 목사 역시 프리메이슨 소속이 아니라는 결론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https://ko.bitterwinter.org/jehovahs-witnesses-and-freemasonry/|#]] 애초에 종교활동에 시간을 많이 쏟으라는 요구가 큰 종파인 [[여호와의 증인]]으로 활동하면서 프리메이슨 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은 [[백수]]가 아니라면 힘든 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