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챌 (문단 편집) === 설립과 성공 === 초고속인터넷 보급과 함께 한창 포털 열풍이 일더나던 1999년, [[삼성물산]]에서 근무했던 전제완 씨에 의해 설립되었다.[* 1963년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그룹]] 인사팀에 근무할 당시 인사정보 시스템 개발을 주관하였다. 사내 컴퓨터 동호회의 다른 회원과 함께 펴낸 컴퓨터 입문서 가 베스트 셀러에 오르면서 주목받기도 했으며, 이를 공로로 제1회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수상했다. 1999년 퇴사 후 5000만원의 자금으로 (주)자유와 도전을 창립하고 훗날 이름을 프리챌로 바꿨다.] 2000년대 초반 커뮤니티와 클럽 서비스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포털사이트였다. 00년대 초반의 인터넷 문화는 [[PC통신]] 시절의 채팅과 동호회 문화의 연장선이었는데, 프리챌은 클럽 서비스에 특화되어 인기를 얻었다. 채팅 서비스는 [[세이클럽]], [[버디버디]], [[Windows Live Messenger|MSN메신저]], [[드림위즈]] 등 4개로 분산되어 있었지만 클럽 서비스는 프리챌이 거의 1인자라고 할 만큼 규모가 컸다. 최절정이었던 2002년에는 일일 평균 방문자 180만명에 회원수 1000만명, 커뮤니티 100만개에 달하는 거대 포털이 되었고 포털 순위 '''7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라이벌로는 [[Daum]] 카페가 있었지만, 프리챌이 제대로 뜬 뒤에는 프리챌 커뮤니티의 규모가 더 커졌으며 이 부분에서는 당시 포털 1위이던 다음을 제쳤다. 포털 페이지뷰 역시 늘어나 페이지뷰 1위였던 [[야후! 코리아]]를 위협할 정도였다. 지상파에서 골든 타임에 TV 광고([[https://www.youtube.com/watch?v=2z2_4InWKpA|광고 1]], [[https://www.youtube.com/watch?v=-rVlqLxW9E8|광고 2]])로 여러차례 내보냈으며, [[온게임넷]]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2000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후원자로 참여했다.[* 라이벌이었던 다음 역시 [[Daum 스타리그 2007]]을 통해 후원하였다. 다만 처음부터 스폰서는 아니었고, 온게임넷이 스폰서를 못 구한 상황에서 다음이 직접 선수들의 오프닝 영상을 보고 만족하여 5월 셋째 주 경기에 들어갈 무렵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