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에타 (문단 편집) === 구성 === 조각상의 구도를 보면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삼각형]] 형태이다. 성모마리아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울지 않고 손을 위를 향하게 하여 표현하고있다. 이때 성모 마리아가 울지않는 이유는 성모는 울지않는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를 [[예수]]보다 훨씬 크게 조각해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https://twitter.com/geometryofsleep/status/931772249127841793|#]] 이는 이전까지의 피에타는 물론이거니와 동시대에 그려진 페루지노의 피에타와 비교했을 때 어색하지 않은 구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반영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지지만, 인위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취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한 미켈란젤로의 재능이 빛을 발한 부분이다.[* 일설로는 중세 유럽에서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미지는 보통 물리적으로 악마를 격퇴하는 '강인한 어머니' 상이었기 때문에 이런 중세인들의 감성 또한 반영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이를 두고 '피에타는 인간이 아닌 [[야훼|하느님]]께 보여드리기 위한 작품이기 때문에, 90도 각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신체비율이 완벽하게 들어맞도록 만들어졌다'라는 설이 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ostrama&logNo=110099842738&categoryNo=36&viewDate=¤tPage=1&listtype=0|자세한 설명과 함께 피에타 상을 위에서 본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교한 예수의 근육묘사와 마리아의 옷주름을 보면 가히 조각으로 이렇게까지 묘사한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예수]]보다 젊게 묘사되어 있는데, 어머니가 아들보다 젊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조각 완성 당시부터 있었다. 이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그의 전기를 쓴 제자 아스카니오 콘디비(Ascanio Condivi, 1525~1574.12.10)에게 '순결한 여자들이 순결하지 않은 여자들보다 젊음을 더 잘 유지하는데, 티끌만큼도 추잡한 욕망의 때가 묻지 않은 육체를 가진 동정녀라면 말할 것도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특히나 이 피에타가 유명한 이유는 미켈란젤로가 남긴 수많은 조각들 중에서 그의 서명이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으로, [[성모 마리아]]의 어깨띠에 "MICHAEL·ANGELVS·BONAROTVS·FLORENT·FACIEBAT(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라고 새겨져 있다. 당시에 성당을 장식하는 업무는 엄연히 상업작가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조르조 바사리]]의 《예술가 열전》에 의하면 피에타가 대중에게 처음 공개됐을 때 사람들이 롬바르디아 출신의 2류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하자 미켈란젤로는 그 말에 화가 나 밤중에 몰래 성당으로 들어가 자신의 이름을 새겼으나, 그날 성당을 나서는 길에 본 황홀한 밤풍경에 '''"하느님께서도 이런 아름다운 작품에 당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는데 내가 이런 짓을 하다니"'''라고 깨달아 뒷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서 이후에 자신이 만든 작품에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