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에타 (문단 편집) === 반달리즘의 피해 === 옛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녀 베드로닐라 제대에 있었던 피에타는 교황 [[율리오 2세]]가 옛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하면서 여러 차례 이동했다가 1749년에 현재의 위치에 놓여졌다. 1736년에는 피에타의 아름다움에 혹한 한 남성에 의해 [[성모 마리아]]의 왼쪽 손가락이 부서져 주세페 리리오니(Giuseppe Lirioni)가 깨진 부분을 갈아서 접합시켰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55409f23e50b458afd5dc11940e90db9f388901c38515c366db9f25acab72937.jpg|width=100%]]}}} || ||<:> 1972년 5월 21일, 라슬로 토트가 자행한 반달리즘. || 피에타가 겪은 최악의 피해는 [[1972년]] [[5월 21일]] [[헝가리]] 출신의 호주인 라슬로 토트(Laszlo Toth / Tóth László)에 의해 행해진 훼손이다. 그는 1938년 헝가리 필리스뵈뢰스바르에서 출생했으며 본래 [[지질학]]을 전공하던 지질학도였다. 1965년 호주에 이민을 가 공부를 했지만 영어에도 능숙하지 못했고 학위 취득에도 실패해 결국 비누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정신 질환을 앓게 되었고, 이 때문에 자신이 재림 예수라는 망상을 갖게 된다. 결국 그는 1971년에 이탈리아어라곤 한 마디도 할 줄 모름에도 오직 교황([[바오로 6세]])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로마로 건너갔지만 당연히 그의 알현 요청은 거부되었다. 이후로 갈수록 그의 망상은 더 심해지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힐 당시의 나이로 추정되는 33세가 되자 극에 달했다. 결국 그는 1972년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가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다(I am Jesus Christ)."'''라는 구호를 내지르며 피에타 상을 15번이나 내리쳐 파손해버리고 만다. 주변에 있던 관광객에게 흠씬 두들겨맞다가 경찰에 체포된 그는 끌려나가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 죽음으로부터 부활했다. [[파티마의 성모|파티마의 계시]]를 밝혀야 한다"고 연신 외쳐댔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05230023910201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2-05-23&officeId=00023&pageNo=2&printNo=15729&publishType=00010|기사]] 한편 떨어져나간 파편의 일부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긴빠이|가져가 버렸다.]]절반가량은 찾았지만 수많은 조각들이 도난당했는데, 특히 [[성모 마리아]]의 [[코]]는 완전히 망실되어서 [[등(신체)|등]]으로부터 일부를 떼어와 복원했다. 복원된 상은 방탄유리 안에 전시되어 있다. 유리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접합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복원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리석 가루와 조각을 붙일 접착제로는 폴리에스테르 수지를 사용했고, 절단된 팔 부분은 산화 방지 철근을 끼워 넣어 몸체와 접합시켰다. 또한 1749년 피에타를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깨져서 절단면을 갈아 붙였다가 1972년에 다시 깨진 손가락 부분은 최초 조각 당시의 길이와 관절의 모양을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대리석보다 가벼운 재료를 사용해 복원 사실이 드러나게 처리했다. 토트가 휘두른 망치에 입혀진 녹 방지 물질이 성모 마리아의 눈썹에 묻어 생긴 얼룩은 화학 용제로 녹여내거나 칼로 긁어낼 경우 대리석에 더 큰 타격이 가해질 수 있었지만, 의외로 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바로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가 떼어내''' 얼룩을 제거한 것.^^[[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1170020920400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1-17&officeId=00020&pageNo=4&printNo=15781&publishType=00020|복원작업에 대한 1973년 1월 17일 동아일보 기사]] ^^ 이 사건의 범인인 라슬로 토트는 이탈리아 사법당국에 의해 체포되었지만, 너무나 명백하게 정신질환자였기 때문에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2년 동안 치료감호 처분을 받아 병원에서 지내다 [[호주]]로 추방당했다. 호주 사법당국 역시 명백한 정신질환자인 그를 구금하지는 않았다. 이후 그는 큰 소란 없이 살다가 2012년 9월 11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https://www.theguardian.com/notesandqueries/query/0,5753,-2565,00.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