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지 (문단 편집) == 역사 == [include(틀:오세아니아의 역사)] 3,500년 전 인류가 피지로 이주해 오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이들은 마탕갈리라고 부르는 부족들을 형성했다. 이후 비교적 발전하였던 옆 나라 [[통가]]가 피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1643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타스만]]이 피지를 발견했고, 1822년 백인들이 [[레부카]](Levuka)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백인 거주자들은 주로 선교사나 백단향 무역상들이었다. 통일 피지 왕국을 건국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은 라투 세루 에페니사 다콤바우(Ratu Seru Epenisa Cakobau) 인데, 그는 피지 동부 해안에 위치한 바우 섬(island of Bau)의 추장이었다. 주위의 섬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둔 그는 1853년 자신을 투이 비티(Tui Viti; 왕으로 번역하거나 [[피지 대추장]]으로 직역하기도 한다.)로 선포하고 1854년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1871년에 피지 전역을 통일한다. 하지만 그 이후 닥쳐온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1855년 존 브라운 윌리엄스라는 사람의 집이 방화로 인해 탔으니 돈 내놓으라 하지, 통가는 바우 섬 일부분을 침략했지, 미국도 침공하려고 하지... 이리하여 그는 1874년 아예 피지를 영국에 그대로 넘겼다.[* 1862년 영국에게 양도를 제의 했지만, 영국은 다콤바우가 피지 전체에서 피지의 왕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고 거절을 했다.] 그렇게 피지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 당국은 피지인이 게으르다고 여겨 피지로 [[인도]]인들을 데려와 노동자로 고용했다. 그리고 토지제도가 성립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을 축적한 인도인들은 피지의 경제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현지 의회가 생길 당시 피지의 추장들과 백인 남성, 그리고 1929년 부유한 인도계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졌다. 일반 피지인들과 여성은 한참 후인 1963년에 가서야 선거권을 얻었다. [include(틀:대영제국의 식민지)] 1970년 피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피지 자치령이 출범했다. 독립한 피지는 경제권을 잡은 인도인 vs 정치권을 잡은 피지인의 세력다툼이 이어졌다.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정당은 피지인들의 동맹당이었다. 그러나 1977년 동맹당이 다수의석 확보에 실패해 인도계의 국민연합당이 정권을 잡게 되자 피지계인 조지 카콤바우 총독은 재선거를 실시해 피지계 동맹당이 선거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1987년 인도계의 피지노동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자 피지계인 [[시티베니 람부카]] 중령이 [[1987년 피지 쿠데타|쿠데타]]를 일으켜 공화국을 선언하고 1992년까지 [[군정]]을 실시했다. 군정이 끝나고 치러진 선거에서 람부카가 승리했으나 람부카는 1999년 선거에서 패배하고 피지노동당의 인도계 출신 마헨드라 초드리가 피지의 총리가 되었다. 그러자 2000년 5월 19일에는 문자 그대로 '''군 경력도 전혀 없는 [[민간인]]인''' 조지 스페이트[* George Speight, 1957~. 정확히는 목재 사업을 운영하던 사업가였다.]가 [[용병]]을 이끌고 [[2000년 피지 쿠데타 미수 사건|쿠데타]]를 일으켰고 [[프랭크 바이니마라마]]가 이를 진압했지만, 진압된 후에 다시 피지인이 집권했다. 피지엔 영국에 의해 생긴 제도가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당시 피지 토지의 84%는 피지인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이 중 대부분은 [[정글]]이거나 교통여건이 안 좋은 오지였고 해안지역(해안가 식당이나 리조트 호텔을 짓기 딱 좋은 곳)의 좋은 토지는 대부분이 인도계가 가지고 있었다. 새로 집권한 가라세는 이런 상황에 있던 피지인 우대 정책을 폈으나 군부의 바이니마라마는 가라세의 정책에 반대했고 2006년 12월 1일 기한으로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막상 당일 바이니마라마가 피지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 중 하나인 군대 vs 경찰간 [[럭비]] 경기를 관전하느라(...)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았다. 바이니마라마가 응원한 군대 팀은 럭비 경기에서 패배했고, 며칠 뒤 군대는 [[2006년 피지 쿠데타|쿠데타]]를 일으켰고 군정이 시작되었다. 이에 사법부가 프랭크 바이니마라마가 일으킨 쿠데타에 대하여 위법 판결을 내리자 피지 대통령은 헌법을 무력화하고 모든 대법관들을 해임시키고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언론들을 강경하게 탄압했다. 2012년 1월 7일 계엄령이 해제되었으며 2014년 9월 17일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고 이 선거에서 바이니마라마 총리가 이끄는 여당인 [[피지퍼스트]]가 59.2%의 득표율로 과반의석(32석/50석)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2022년 총선에서는 시티베니 람부카 전 총리가 이끄는 인민동맹이 승리하여, 람부카는 '''23년만에''' 총리직에 복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