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켈하우베 (문단 편집) === 개량과 퇴역 === 1892년에 놋쇠 장식 등이 적에게 빛나 눈에 잘 띄는 문제가 지적되자 '''가벼운 천을 덧댄 가죽제 피켈하우베''' M1892 Überzug가 표준이 되었다. 적에게 시인성이 높은 것도 피켈하우베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에 한국군이 계급장 색을 바꿨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자세한 맥락은 해당 항목 참조.] 일단 탄생목적 자체가 착용자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을 겸한 것이라, 혼잡한 상황에서 봐도 여기 독일군이 있소 나 잡아잡소 하고 먼거리에서도 눈치채기 좋게 반짝거렸다. [[파일:external/www.kaisersbunker.com/uberzug_5.jpg]] [[제1차 세계 대전]]기에 Überzug 피켈하우베를 착용하고 있는 독일육군 병사.[* 피켈하우베 정면에 써있는 숫자는 해당 장병의 소속 연대를 적어놓은 것이다. 후에 슈탈헬름이 차차 도입되며 피켈하우베가 도태되어갈 때 쯤엔 연대 숫자를 정면에 써놓지 않게 된다.] 위장성을 고려하여 위장피를 씌우고 경우에 따라서 정수리의 뿔장식을 제거하기도 하였다. 장식의 결속 방식이 나사로 돌려 조여넣는 식이라 착탈이 쉬웠다.[* 사실 굳이 제거하지 않아도 피켈하우베 뿔이 생각보다 충격에 약했기 때문에 전투중에 휘어지거나 부러지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말 그래로 장식이여서 이걸로 박치기하라고 있는게 아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도 천이 덮인 가죽 피켈하우베가 육군의 정규복식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당시의 군사적인 추세에서 구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크게 문제는 세 가지였다. '''눈에 잘 띄고, 안전하지 못하며, 생산이 느리고 비쌌다.''' 피켈하우베 세트를 맞추려면 적어도 17.50 마르크정도가 필요한데, 17.50 마르크는 당시 일반 병사 두달 월급 정도이다. 특히 [[참호전]]에서는 피켈하우베의 단점이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참호전의 양상은 구덩이 속에 들어가 몸을 가리고 머리와 상반신의 일부만 내놓는 형태였는데, 뿔이 솟아나 있어 머리를 다 내밀기도 전에 착용자의 위치를 돋보이게 해 줘 [[저격]] 대상이 되거나 정확한 좌표 파악이 필요한 포병들에겐 좋은 관측대상이 되었다. 좁은 참호에서 걸리적거리기도 했을 테고... 게다가 기본적으로 [[가죽]]으로 만들어져서 백병전시에는 어느 정도 방호력은 있었지만 총알에 대한 방탄 성능은커녕 포탄이나 수류탄 등 파편 방호조차 이미 버거웠다.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총탄에 맞아 죽은 병사보다 포탄이나 수류탄 등 파편에 맞아 죽는 병사들이 더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피켈하우베의 훤히 드러난 귀와 후두부는 파편에 매우 취약했다. 이 때문에 과도기적인 피켈하우베 중에는 뒤쪽을 길게 만들어 후두부를 완전히 덮은 형태도 나왔다. 높은 생산 단가도 문제였다. 전쟁기간동안 영국의 해상 봉쇄로 인해 주로 남미에서 가죽을 수입하던 독일 내의 가죽 재고량이 거덜나기도 했거니와 다양한 재질의 각종 장식들은 생산 속도도 떨어트렸다. 과도기적으로 철로 만들어진 피켈하우베가 도입되기도 했지만,[[http://fake-hunter.forum-actif.net/t901-un-pointu-surprenant-casque-a-pointe-camoufle-ww1#3737|금속 소재를 사용한 데다 위장무늬까지 도색한 경우]] 여전히 높은 단가, 까다로운 공정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전쟁]]이 심화되면서 [[http://www.kaisersbunker.com/feldgrau/helmets/fgh39.htm|펠트]], 종이로 만드는 사례도 있었다. 전근대적인 헬멧은 다른 유럽국가의 군대에서도 문제를 일으켰고, 적국인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철모]]를 채택하고 뒤이어 영국도 철모를 채택하면서 다른 연합군 국가들에도 철모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다.[* 유럽에 위치한 연합국들에서는 주로 프랑스식 '아드리안' 철모를 채택하였고, 영연방권이나 미국 등 국가들에서는 영국식 '브로디' 철모를 채택하였다.] 전쟁이 심화되자 화려하게 장식하여 사기를 증진하는 효과는 점점 더 의미를 잃었다. 반대로 현대화된 전선을 극복하고자 실용성이 대두되었고 독일군부에서도 철모 채택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 철모는 직사화기로부터 제한적인 보호도 가능했지만, 무엇보다 이런 파편사상율을 극적으로 줄여주었기 때문에 세계대전의 획기적인 발명으로 손꼽힌다. 철모는 튼튼한 데다 보호 범위가 넓었고, 시인성이 낮아 위장에 적합했으며 주변환경에 최대한 녹아들게 하려는 배려가 있어서 구식 군모와 비교했을 때 생존성이 월등했다. 생산 시간과 단가에서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뚝딱 찍어내는 철모와 수공으로 섬세하게 장식을 만들던 피켈하우베 같은 구형 군모가 비교될 리가 없었다. 결국 1916년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철모인 [[슈탈헬름]]을 채택함으로써 피켈하우베가 정식 전투복식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피켈하우베보다 나아졌지만 생산 시간 및 단가를 많이 잡아먹었고, 거기에다 독일군의 만성 물자 부족도 더해져 채택 이후인 1916년에 벌어진 [[베르됭 전투]]나 [[솜 전투]] 당시 최정예 사단의 장병들조차 상당수가 여전히 피켈하우베를 쓰고 있었고, 대전 말에야 전군에 보급이 완료되었다.[* 이러한 낮은 생산성 및 경사가 작은 디자인으로 인해 떨어지는 방탄 능력을 해결하기 위해 [[제2차 세계 대전]] 말에 디자인을 변경한 파생형이 개발되었으나 [[아돌프 히틀러]]의 반대로 생산이 늦어져 대전 극후반에서야 극소수만 사용되었고, 대전 후 [[국가 인민군|동독군]]에 채택되었다. 다만 생긴 게 영락없는 바가지.. 착용자가 상당히 모자라보이는 효과가 있는지라 히틀러가 반대할 만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