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휘 (문단 편집) == 유형 == * 국휘(國諱)는 군주의 이름을 피하는 것이다. 보통 황제는 7대 위, 왕은 5대 위의 지배자까지 그 이름을 피했다. 근데 밑에서 보이는 몇몇 사례들을 보면 일반적으론 해당왕조가 망할 때까지 피휘가 지속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듯 하다. * 가휘(家諱)는 집안 조상의 이름을 피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려 말 학자 [[이제현]]은 [[작제건]]-용건([[세조(고려)|왕륭]])-[[왕건]]으로 이어지는 고려 개국 당시 왕건 가문의 이름자 물려받기를 상당히 기이하게 여겼다. 가휘만이 [[현대]]까지도 꽤 남아 있다. 전근대에 비해서는 많이 사라졌지만 보통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는 자식이 쓰지 않고, 엄격한 집안에선 증조부나 고조부까지도 피휘의 대상이 된다.[* 일단 항렬에 따라 금수목화토 (오행상생법),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천간법),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지지법), 일이삼사오륙칠팔구십 (수교법)으로 돌아가는 돌림자는 당연히 못 쓰는 것이고, 남는 한 글자만 피하면 되는 것이므로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발음이 같은 한자까지는 봐주는 것 같다.[* [[김정일]]의 한자 이름은 원래 金正一 이었지만 아버지 [[김일성]]을 잇는다는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1980년 10월의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 직후 이름을 형제간에 공유하는 돌림자 일(一) 자에서 아버지 이름의 한자를 따 金正日로 고쳤다. 동아시아 유교사상의 관점으로 봤을 때 [[백두혈통|이 집안]]은 그냥 무식한 [[콩가루 집안]]인 것이다.] * 성인휘(聖人諱)는 성인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가 공자의 이름이다. * 원휘(怨諱)는 원수지간인 사람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뜻한다. 이래서 동등한 나라 사이의 외교 문서나 집안 사이의 서신 등에서는 서로 피휘를 지켜 주었고, 군주의 이름에 쉬운 글자가 들어 있으면 나라 전체에 불편이 생기고 외교상의 문제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군주와 그 일족의 이름은 잘 쓰지 않는 글자를 택했으며 주로 한 글자로 지었다. 피휘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나뉜다. 피휘한 글자는 대개 어느 한자든 음을 그대로 읽지 않았다. * '''결자'''(缺字) 피휘할 한자를 통째로 생략한다. 이 경우 피휘할 자리를 아예 공백으로 남겨 버리거나 아니면 공백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삭제한다. 대표적으로 이것이 정착된 예가 관(세)음보살로 당태종 이세민의 세(世)를 뺀 것이 관습적으로 남은 것이다. 또 <수서>에서는 [[왕세충]](王世忠)의 이름을 王□忠이라고 쓰고 왕충으로 읽었다. * '''결획'''(缺劃) 앞의 결자와는 달리 피휘할 한자를 생략하지 않고 그냥 쓰되, 해당 한자에서 일부 획을 빼고 쓴다. 주로 마지막 획을 빼지만, 마지막 획을 빼서 다른 글자와 헷갈린다면 가장 헷갈리지 않을 획을 골라서 뺀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旦(아침 단) 자는 마지막 획(一)을 빼면 日과 형태가 같아져서 헷갈리므로 마지막 획은 그대로 남기는 대신 日 안의 가운데 가로획을 빼서 口 + 一, 즉, '므'의 형태로 적었다.[* 대부분은 아침 조(朝)로 바꿔 썼고(밑에 나올 대자代字의 방법), 대자가 곤란할 때만 이런 식으로 결획을 했다.] [[태조(조선)|태조]] 이성계가 개명한 이단이라는 이름의 피휘 때문이다.[* 이성계가 바꾼 이름이 하필 이단인 것은 旦이 '조선'의 朝와 의미가 통하기 때문이다. 조선을 세운 사람이니 조선과 관련 있는 글자로 이름을 바꾼 것.] [[강희자전]] 원본에도 이런 결획된 글자가 몇 개 있다. 예를 들어, [[강희제]]의 이름으로 쓰인 玄과 燁은 마지막 획을 빼서 𤣥과 𤍞으로 변형시킨 형태가 수록되어 있다. * '''대자'''(代字) 피휘할 한자를 아예 생략해버리는 결자와는 달리 피휘할 한자가 빠진 자리에 해당 글자와 뜻이 같거나 뜻이 비슷한 별도의 한자를 쓴다. 연(淵)개소문을 천([[泉]])개소문으로 쓰거나[* [[고조(당)|당 고조]]의 휘인 연(淵)을 피휘], [[문무왕]](文武王)을 문호왕(文虎王)으로 쓰거나[* [[혜종(고려)|고려 혜종]]의 휘인 무(武)를 피휘], 당나라 판본 사기(수초본)에서 세가(世家)를 계가(係家)로 쓴 예[* [[태종(당)|당 태종]]의 휘인 세민(世民)의 세(世)를 피휘] 등이 있다. 주석서인 사기색은의 경우는 계가(系家)로 적었다. * 몇몇 고유 명사의 경우 피휘를 위해 아예 새로운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었다. 피휘를 하는 것도 단순히 글자를 피하는 것에서부터 심지어 '''모양이 비슷한 글자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로 안 되면 음만이라도 바꿔 읽었다. * 글자의 전체를 피한다.(예: 한나라 문제의 이름 유항[劉恆][* 恆은 이체자인 恒으로 쓰기도 한다.]를 피휘하려고 같은 의미를 갖는 [[常]] 자로 대체, 기주의 항산[恆山]을 상산[常山]으로 바꾸었다. 그 유명한 '상산 [[조자룡]]'의 출신지인 그 상산 맞다. 또 한나라 경제의 이름이 유계[劉啓]였기 때문에 계칩[啓蟄]을 [[경칩]][驚蟄]으로 바꾸었다. 단, 일본은 지금도 계칩이라 한다. 일본에서 계[啓]와 경[驚]의 발음과 같아서 그런 듯.) * 글자의 일부도 피한다. (예: 진시황의 이름 정[政]자의 일부인 正을 피하려고 [[정월]][正月]을 단월[端月]로 바꾸었지만 진나라가 통일 후 15년밖에 가질 않아서 오늘날도 그냥 정월로 쓴다.) * 휘의 소리를 피한다. (예: 당나라의 [[국성]]인 리[李]와 소리가 같은 리[鯉]가 뜻하는 '[[잉어]]'를 글로 쓰지 못하게 하였다. 그 때문에 잉어는 리[鯉] 대신 적선공[赤鮮公: 붉은 물고기님]이라는 존칭으로 불렸다.) * 모양이 비슷한 글자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예: 황[皇]자와 죄[辠]자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죄[辠]를 죄[罪]로 바꾸기도 하였다.) * 마지막으로 성인의 말씀, 선대왕이 쓴 글, 옥편 등 피휘를 하지 못 할 경우, 피휘는 하지 못하더라도 음만이라도 바꾸어 읽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에 [[旦]] 자를 피휘하지 못한다면 같은 뜻인 [[朝]]의 발음인 '''됴'''로 읽었다. 공자의 이름인 丘를 부득이 유교 경전 등에서 읽게 된다면[* 고전 [[한문]] 문법에서 자신의 이름을 자기 자신을 낮추는 1인칭 대명사로 쓰기도 했다. 한문에서 자기 이름을 주어로 사용하는 것은 현대 한국어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는 1인칭 대명사 '저'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가 된다. 그래서 유교 경전에서 공자의 이름자인 丘(구)가 등장하는 구절은 대개 공자가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지칭한 대사를 경전 내에 직접 인용해놓은 것이다.] 실제로 발음하지 않고 모([[某]])라고 발음했다. 공자 자신은 생존 당시에 某가 아니라 丘의 발음을 그대로 읽었겠지만 후세 사람들이 감히 따라 읽지 못하고 회피한 것이다. 공자 외에도 주요 성현들이라든지 기타 읽기가 곤란한 제왕이나 부모의 이름 등도 모(某)라고 읽곤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