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사 (문단 편집) == 역사 == [[인쇄술]]이 제대로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동일한 책을 만들려면 당연히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직접 베껴 써야만 했다. 그런데 필사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작업량도 많아[* 우선 필사만 해도 기본적으로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하기에 문맹률이 높았던 시대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중세 유럽에서 만든 필사 책에는 글자만이 아니라 삽화나 장식이 들어갔다. 중세 유럽의 필사 과정은 책 제작, 필사, 편집 및 교정, 삽화, 글자 강조를 담당하는 5가지 직책이 분업하는, 현대의 [[신문]] 제작에도 비견할 수 있을 만큼 고도로 정교한 과정이었다. 박물관에서 중세의 필사본들을 보면 단순한 책 한 권을 뛰어넘는 예술품 수준이다. 또한 글자도 서예체로 써 내려야 했으므로 작업량이 대단했다.] 이 당시에는 책 값이 상당히 비쌌다. 그래서 [[수도원]]의 고행 과정에도 [[성서]] 필사가 있었을 정도. 동양에서도 [[불교]]의 [[불경]]을 필사하는 [[사경]]이 단순히 인쇄술의 미발달을 넘어 옮겨쓰는 행동 자체가 중생과 내세를 이롭게 하려는 공덕 행위의 일종으로 간주되어 권장되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사경을 보면 색지나 비단에 금가루를 섞은 먹으로 글자를 쓰고 불경에 등장하는 장면을 삽화로 그려 넣는 등 지금 기준으로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수준 높은 작품이 상당히 많으며, 현대에도 사경 자체를 전문으로 하는 예술 분야도 있다. 일본에서도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일족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一門의 사람들과 함께 사경해 [[이쓰쿠시마 신사]]에 봉납한 헤이케 노쿄(平家納経)가 현존하는데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몇 개월에서 몇 년간에 걸친 필사는 힘든 작업이었다. 말 그대로 밭갈이에 비유됐다. 심지어 천국에 들어가려는 참회의 방법으로서 간주할 정도였다. '어느 정도 필사하였는가'로 천국으로 가는 길을 계산하기도 하였다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20406|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문헌 자료를 인쇄하거나 촬영하기가 어렵다면, 학자들이 직접 필사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용을 왜곡하거나 첨삭하는 등의 필사자의 주관이 들어가거나 오자, 탈자와 같은 실수가 있을 수 있으므로 [[교차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작]] 항목에도 서술되었지만, 고대의 [[서적]]이나 [[서예]] 미술품 가운데 원본은 소실되어 사라지고 필사본이나 모사본이 유일하게 현대에 남아있는 예가 잦다. 이런 작품은 비록 베껴 만든 것일지라도 매우 높게 평가받고 희귀한 자료로서 취급된다. 그 대표로 [[왕희지]]의 난정서도 원본은 소실되었고 모사본만이 현대에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