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재우 (문단 편집) === 사주에서의 전투 === 개희 2년(1206년) 4월, [[권신]] [[한탁주]]가 북벌을 일으킬 때 곽예[* 곽예는 스스로를 [[제갈량]]에 견주었으나, 금군이 내려오자 [[장강]]으로 도주하고 만다.] 밑에서 무의대부로 있었고, 통제 진효경 등과 함께 사주를 공격하였다. 필재우가 새로 뽑을 결사군을 선봉으로 뽑아달라고 부탁하자 곽예가 그에게 87명을 주었다. 초무사는 진병 날짜를 정했는데, 이를 들은 금군이 이를 듣고 시장을 폐쇄하고 성문을 막아 대비했다. 필재우가 간하였다. >적들은 우리가 진군할 날짜를 이미 알고 있사옵니다. 우리가 기이한 방법으로 이겼으니 하루라도 빨리 진군해 불의에 떨었어야 했사옵니다. 진효경은 허락하였다. 필재우는 사졸들을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고 충의로 격려하여 사주로 진군하였다. 사주에는 동서 두 도시가 있는데, 필재우는 영을 내려 전기와 배, 노를 오른쪽에 배열해 놓고 서성을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급산(急山)에서 곧장 동성(東城) 남쪽 모퉁이로 올라가 먼저 성벽 위로 올라가 수백 명의 적을 죽이고 금군은 크게 패하자 성을 지키는 사람들은 북문을 열고 달아났다. 동성이 함락된 후에도 서성은 굳게 지켜졌고, 다시 대장기를 들고 크게 소리친다. >대송의 필 장군이 여기에 있다. 너희들은 중원의 유민이니 빨리 와서 귀순하라. 곧 회평지현(淮平知縣)이 헌성(獻城)을 바치고 투항하여 사주(泗州)의 두 성을 모두 송군이 점령하였다. 곽예는 장병을 위로하고, 어보자사아패를 필재우에게 수여했으나, 필재우는 이를 사양했다. >국가는 황하 이남에 81주가 있는데, 지금 사주 두 성을 탈환하면 자사의 벼슬을 얻는다면 앞으로 무엇을 하사할 것이옵니까? 더구나 조정에서 오는 아패를 몇 개 얻을 수 있사옵니까? 그는 완강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얼마 후에 환위관으로 임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