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재우 (문단 편집) === 육합에서의 격전 === 금군은 7만 명이 초주성 아래에 주둔하고 있는데, 삼천 명이 회양에서 양초를 간호하고 또 삼천 척의 곡식을 실은 배가 대청하에 정박하였다. 필재우가 이를 탐지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은 우리의 10배이다. 우리가 이기기 어려우니 계략으로 적을 쳐부술 수 있다. 그래서 허준을 보내 작은 길에서 회양으로 달려가게 했는데, 밤 이경에 군사의 입에서 한 발이 들어가 쥐죽은 듯 적진에 이르렀다.송군은 저마다 불씨를 가지고 잠입해 50여 군데의 곡식 수레 사이에 매복했다가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불을 질렀다. 금군은 놀라 도망쳤고, 오고륜사륵·포찰원노 등 23명은 생포됐다. 개희 2년(1206년) 11월 금군이 황구탄에서 회하를 건넜고, 와구의 수장이 도망쳤으며, 호, 저의 2주가 차례로 함락되자 금군은 안풍군을 격파했다. 필재우는 여러 장수들을 만나 말하였다. >초주는 군사가 많고 적의 군량과 마초가 비었으니 내가 걱정하는 것은 회서뿐이다. 육합(六合)이 가장 중요하고, 적들은 반드시 전력을 다해 공격할 것이다. 그리하여 군사를 이끌고 육합으로 달려갔다.얼마 후 조정은 그에게 회동군마를 절제하라고 명령했다. 금인이 죽진까지 다다르자 송군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 성을 나가 적을 맞이하더니, 북소리를 듣고 성에 깃발을 나란히 들었고, 금인은 황급히 도망쳤고, 송군은 추격하여 금군을 크게 물리쳤다. 금 만호 완안포랄도, 천호 니방고가 10만 명의 기병을 이끌고 성가교, 마안산에 주둔하고, 진병하여 육합성을 에워싸고, 제당목을 불태우고 참호의 물을 끊으려 하자, 다시 강력한 쇠뇌로 적을 물리친다. 이윽고 성중의 화살이 바닥나자, 필재우가 청개를 모아 성 위로 가져온 뒤, 금군은 송군의 통수인 줄 알고 화살을 다투어 쏘았다. 이윽고 화살이 모였는데, 송군은 20여만개의 화살을 받았다. 도통 흘석렬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가고, 얼마 뒤 군사를 늘려 성을 에워싸고, 육합성 사면의 금군 막사가 삼십 리나 길게 이어졌다. 필재우가 성문 앞에서 악을 연주하라는 명령을 내려 금군에게 송군이 한가하다는 것을 알렸고, 종종 기병을 보내 금군을 습격했다. 금군은 밤낮으로 쉬지 못하고 물러갔음에도 금군이 다시 올 것으로 예상되자 친히 군사를 이끌고 성동의 야신교를 빼앗아 적후에 나타나자 도망쳤고, 추저우까지 추격하여 큰 비를 만나야 비로소 회군하였다.육합일역, 송군은 금군 노새와 말 천오백삼십일 필, 안장 육백 벌, 그리고 수많은 갑옷과 깃발을 노획하였고 그 공으로 충주단련사에 임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