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핍궁사건 (문단 편집) === [[북경정변]]의 발생 === 1924년 10월 17일, [[선통제]]는 [[광서제]]의 황비인 단강태비의 병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수심에 빠져 있었다. 위독하던 단강태비는 10월 21일 사망했고 청나라 황실은 자금성 바깥의 군벌들간의 내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10월 23일, 아침 북부에서 병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지안문이 폐쇄되고 전화도 불통이 되었다. 겁에 질린 베이징의 부호들은 리츠 호텔을 비롯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외국인 지구로 피난하고 있었고 베이징을 점거한 [[펑위샹]]의 부대가 자금성 맞은편의 [[징산공원|경산]]을 점령했다. 선통제를 알현한 레지널드 존스턴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를 묻자 선통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들은 허락도 없이 그곳으로 갔습니다. 도대체 그들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소. 그런데 소영은 그들에게 차와 음식을 보냈습니다. 손님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거죠." 존스턴이 군대가 감사의 말을 표했냐고 묻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더 달라고 했습니다." 선통제와 존스턴은 퇴수산의 어경정에서 망원경으로 경산의 군인들을 관찰한 다음에 양심전에서 점심을 먹으며 베이징의 혼란스러운 소식에 대해 들었다. 대총통 [[차오쿤]]이 몰락하고 [[우페이푸]]가 패배하였다는 흉흉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자금성 내부에는 공포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단강태비의 장례식은 대폭 생략되어 간소하게 처리되었는데 경산을 점령한 손악의 군대는 자금성을 지키는 호군 장교와 병사들에게 연일 도발하였다. 존스턴은 이들이 싸움을 개시할 구실을 찾는 것으로 보였다고 회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