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핍궁사건 (문단 편집) === 자금성 점거 === 11월 5일 아침, 녹종린이 지휘하는 펑위샹의 부대가 자금성 안으로 쳐들어가서 신무문을 점거해서 봉쇄했다. 이들은 9시에 호군을 무장해제하고 해산시킨 다음 선통제의 처소까지 쳐들어왔다. 정부 측 대표로 녹종린, 장벽, [[리스쩡]]이 나섰는데 장벽이 군경 몇명이 필요하겠느냐고 묻자 녹종린은 20명이면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놀란 내무부대신 소영이 나타나자 녹종린은 국무원에서 통과된 수정청실우대조례, 즉 청 황실 우대조건의 수정판이라는 문서를 내밀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대청황제는 공화국과 그것을 구성하는 다섯 민족의 정신에 진심으로 공감을 표하고자 하며, 공화국의 여러 제도를 더 이상 위반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만주 황실 우대 조건을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제1조. 금일부터 선통 황제는 황제의 존호를 영구히 폐지한다. 이후에는 법률상 공화국 시민에게 부여된 모든 권리를 향유하기로 한다. 제2조. 이 조건으로 수정한 이후부터 공화국 정부는 청 황실에 대해 5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베이징의 빈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공장 설립에 200만 달러를 지출한다. 만주 기인 출신의 빈민은 고용을 우선한다. 제3조. 청 황실은 원 '우대 조건'의 제3조에 따라 금일 자금성을 떠나야 한다. 이후 자유롭게 주거를 선택할 수 있으나, 그들을 보호할 책임은 공화국 정부가 계속 지기로 한다. 제4조. 청 황실의 종묘나 황릉에서 거행되어 온 제례는 영구히 유지하며, 공화국은 종묘와 황릉을 적절히 보호하기 위해 경비병을 파견하기로 한다. 제5조. 청 황실의 사유재산은 황실에 귀속되며 황실이 전적으로 향유한다. 공화국 정부는 그 재산을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 단, 모든 공공 재산은 공화국 정부에게 귀속하기로 한다. 민국 13년 11월 5일, 녹종린, 경조윤[* 베이징 시장.], 왕지상, 장벽[* 베이징 경찰총감.].|| 소영은 크게 놀라 리스쩡에게 "당신은 옛날 재상 이홍조의 아드님이 아니신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소?"라고 물었으나 리스쩡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소영은 다시 녹종린에게 "당신은 옛 재상 녹전림의 일가가 아니신가? 왜 우리를 이렇게 압박하는가?"라고 따졌다. 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녹:"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우리들이 여기에 온 것이 국무원의 명령을 집행하러 온 것이며 민국을 위함과 동시에 청실을 위한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아니라면 그렇게 종용할 생각을 마시오." >소:"우리 대청이 입관 이후 도량이 넓게 정사를 하였고 백성에게 미안한 일을 한 적은 없소. 우대조건이 아직 있는데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가?" >녹:"당신이 말하는 것은 청실의 입장이오. 그러나 대청이 입관한 후의 [[양주십일]]과 가정삼도는 백성들이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오.[* 청나라가 중원에 쳐들어와서 양주와 가정에서 각각 10일과 3일 동안, 청나라 군대에 저항하는 한족 백성들 수십만 명을 학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5273|#]]] 더욱이 [[장쉰]]이 [[장훈복벽|복벽]]하여 민국을 전복시켰고 우대조건은 일찍부터 청실이 파괴하였소. 당시 전국 군민이 일치하여 요구하길 복벽의 괴수를 응징하도록 하였는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중요한 현안이오. 최근 섭정내각이 성립되어 각 방면에서 속속 복벽의 괴수를 응징하라고 요구하고 민의가 격분하여 직접 조치하면 청실에 불리한 행동이오. 현재 궁내외에는 이미 군경들이 가득하고 그 기세가 흉흉하고 손을 보려고 하고 있소. 만약 우리들이 잠시라도 지체하면 지금 난리가 날 것이오." 소영은 선통제에게 이를 보고하였고 어떻게든 상황을 돌려보려 했지만 녹종린이 "대포 쏘는 것을 20분만 미뤄라."라고 소리 치며 위협하자 결국 청실은 자금성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선통제는 차분했지만 두 태비는 자금성을 떠나느니 차라리 자결하겠다고 강력히 저항했다. 내무부총관을 비롯해 선통제의 심복들도 크게 분개했다. 하지만 총 앞에 저항할 수 없는 노릇이므로 시종 한 사람과 한두명이 운반할 수 있는 개인물품을 동반하고 차에 타서 자금성을 떠났다.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병사가 한명씩 운전수 옆에 탔으며 자동차 바판 위에도 병사가 두명 탔다. 선통제는 순친왕부로 이동했고 펑위샹의 병사들이 순친왕부를 포위하고 선통제의 외출을 막으며 감시했다. 순친왕부에 도착한 선통제에게 녹종린이 물었다. >[[답정너|"이 이후부터 당신은 평민이 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황제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중화민국은 황제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고 있고 우리들은 황제를 대하는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선통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이미 수정한 우대조건을 받아들이기로 답변을 했으니 당연히 다시 황제가 될 수 없소. 한 사람의 평민이 되길 원하오." 그러나 녹종린이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들은 평민에 대해서 당연히 보호합니다." 한편 아침을 먹다 재도 패륵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존스턴은 크게 놀라 자금성에 전화를 했지만 이미 전화가 모두 끊긴 후였다. 10분 후에 패륵이 차를 타고 존스턴의 집을 방문하자 존스턴은 패륵과 같이 차를 타고 자금성으로 갔다. 하지만 병사들이 엄중히 감시하며 아무도 통과하지 못하게 했다. 존스턴은 자신의 명함을 주며 자금성에 출입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고 병사가 상관에게 보고하러 간 사이에 패륵이 속삭였다. >"만약 저들이 그대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다면, 나를 그대의 하인이라고 말해주시오." 하지만 병사들은 존스턴의 출입을 금지했고 존스턴은 차를 돌려 외국 공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먼저 외교단 단장인 네덜란드 공사 오우덴데이크를 찾아간 존스턴은 영국 공사 로널드 맥클리와 네덜란드 공사 오우덴데이크를 만나 자금성에 펑위샹의 군대가 침입한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이어 일본 공사 요시자와 켄키치도 돕겠다는 의사를 알려왔다. 한편 황제, 황후, 태비들이 모두 살해되었으며 펑위샹이 만주 황족들을 모조리 색출해 죽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청나라의 왕공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수십명의 청나라 왕공들이 공사관 구역으로 몰려가 도움을 청했고 비어있던 독일 공사관 경비대 건물이 임시 숙소가 되었다. 이후 오우덴데이크, 맥클리, 요시자와가 중화민국 외교부를 방문한 결과 선통제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사들의 질의에 신임 외교총장 [[왕정팅]]은 중국 내정에 관한 문제이니 외국 공사단이 개입할 권리가 없다고 답변했으나 공사들이 황제가 모욕과 학대를 받고 있지 않는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확인할 권리가 있다고 맞서며 만약 황제가 학대당한다면 강하게 항의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왕정팅은 황제의 안전에 대해 보증하며 중국의 여론이 청실의 축출을 요구했다고 해명했다. 오우덴데이크에게 선통제의 신변에 대한 소식을 들은 존스턴은 즉각 순친왕부로 가서 선통제를 만났다. 선통제는 침착했으며 순친왕은 어쩔 줄 몰라하며 "황상께서 놀라시지 않도록 말씀드려 주게."라는 말만 반복했다. 존스턴이 선통제에게 자신이 순친왕부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를 원하냐고 묻자 선통제는 처음에는 그렇게 해달라고 하다가 마음을 바꿔 외국 공사들과 연락하기 위해 공사관 구역으로 가달라고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