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하와이 (문단 편집) === 주민 === 19세기부터 [[플랜테이션]] 농업이 매우 활성화되어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건너왔다. 따라서 인구의 주류가 아시아인으로 1900년 기준으로 이미 [[일본인]](40%)과 [[중국인]](16%)이 합쳐서 60% 가까이 되었다. 2010년 기준 아시아인 비중은 38.6%로 1970년(57.7%)과 1990년(61.8%)보다 수치는 낮지만 이는 2000년 이전 인구조사에서 따로 분류하지 않은 혼혈(23.6%)과 [[하와이 원주민]]과 태평양 섬 주민(10.0%)의 수도 감안해야 한다. 백인 인구는 1990년엔 33.4%였으나 2010년엔 24.7%까지 줄어들었다.[* 하와이에서 살던 백인들은 현재 대부분 인종차별 때문에 호주로 이민을 많이 갔다.] 현재도 하와이 인구에서 가장 큰 집단이 [[필리핀인]](13%)과 [[일본인]](12%)이다. 미국에서 비백인이 백인보다 많은 유일한 주이다(히스패닉을 백인으로 분류할 때). 카메하메하 사학재단을 소유하고 있는 하와이 왕족 출신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돈이 많다(대부분 부동산 수입). [[카메하메하 1세]]의 증손녀인 Bernice Pauahi Bishop 공주의 유언으로부터 설립된 카메하메하 스쿨은 돈을 엄청나게 써야하는 미국 사립 고등학교와는 달리, 입학하는 모든 학생의 학비 면제, 전원 노트북 무료 증정 등 엄청나게 혜택을 받으면서 학교 생활을 하는 학교로 유명하다. 다만 입학 자격은 [[하와이인]]의 피를 25%(즉,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중 1명 이상이 하와이인이야 함) 이상 물려 받아야 하는데, 이 때문에 과거 수년간 인종차별적인 입학 규정으로 소송을 당해왔으나, 2003년부터 2008년 까지 진행되었던 소송에서 학교측이 승소한 것을 마지막으로 하와이 법정에서는 더 이상 인종과 관련된 입학규정으로 인한 카메하메하 스쿨에 대한 소송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학교 측은 따로 원고와 합의하여 700만달러를 지불하기도 하였다. 미국 50개 주 중에서 알래스카와 함께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곳 중 하나다 보니[* 호놀룰루에서 [[휴스턴]]과 [[도쿄]]가 비슷한 거리에, [[클리블랜드]]와 [[서울]]이, [[뉴욕]]이 [[상하이]]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 역으로 뉴욕에서 하와이는 [[모스크바]]보다도 멀다.] 하와이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인종은 아시아인이다. 당연히 미국 최고 수준으로, 2000년 인구조사 당시 하와이 인구 중 아시아인의 비중은 무려 41%로 역대 최고였다. 지금은 다소 줄었으나 여전히 아시아인의 비중이 높다. 그러다보니 미국에서 아시아 사람들이 가장 살기 좋은 주에 속한다. 미국 최초의 아시아계 [[주지사]]도 하와이에서 나왔다. 조지 아리요시가 1974년부터 1982년까지 주지사직을 재임했으며 이외에 [[한국계 미국인]] 최초 시장(하와이 카운티)으로 뽑혔던 공화당 소속 해리 킴 또한 [[사탕수수]] 노동이민자의 아들인 한인 2세로 2000년 12월부터 2008년까지 빅 아일랜드 시장직을 재임했다.(이전의 빅 아일랜드의 시장 중 다수가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그리고 2016년에 다시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2020년 12월 7일까지 임기수행을 마쳤다. 하와이는 미국에서 [[일본계 미국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에서 제외될 정도였다. 일본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냥 가서 맨몸으로 부딪혀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이 많다. 특히 그중에서도 [[오키나와]]출신 [[류큐인]]들이 많은데, [[일본 제국]] 시절 [[오키나와/역사/일본 제국|본토로부터 핍박과 차별]]을 당하여 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많은 수가 이주해왔다. 이주 아시아인의 조상들이 남방계라서 그런지, 하와이는 아시아인이 주류인 것을 감안해도 아시아인 주민들의 체형이 유난히 키가 작고 왜소하다. 덕분에 [[일본어]]와 [[엔화]](円貨)가 대충 통하고, 일본계 한국인 가수 [[강남(가수)|강남]]이 고등학생 시절 미국 하와이 유학을 갔었다는 얘기가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정도로 일본인 유학생이 꽤 많은 지역이다. 이렇게 일본과의 관계가 깊기 때문에 하와이에 있는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하와이에 대한 일본인의 수요가 많아서 1년에 하와이를 방문하는 일본인의 수는 한국인의 5~6배 가까이 된다. 일본의 대표 백화점인 세이부 백화점의 하와이 지사가 있었으며, 하와이 대표 편의점인 ABC스토어(신발가게 체인점 [[ABC마트]]와는 다른 곳)의 창업주도 일본인이다. 심지어 하와이 곳곳에는 일본 각지에서 분사해 온 [[신사(신토)|신사]]까지 있으며 일본인 관광객도 많아서 [[일본항공|일본 쪽]] [[전일본공수|항공사]]들은 일본발 하와이행 노선에서는 무조건 대형 기종을 끌고다닌다.[* 심지어 일본에서 운용중인 단 3대의 [[A380]]들은 소속 항공사인 [[전일본공수]]에서 아예 전부 다 여기에 고정으로 투입하려고 도색까지 별도로 마련했다.] [[한국인]]도 꽤 있어서 1902년~1903년 하와이 첫 한인 이주[* 12월 [[인천항]]을 출발하여 바다를 넘어가는 사이에 해가 바뀌었다. 대부분이 [[인천]] [[내리교회]] 교인들이었다. 한인이 많은 케'에아모쿠(Ke'aumoku)에 있는 한인 이주 110주년 기념비에도 [[인천]]이 적혀 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잃으면서 이주가 중단되었다거나, 혹은 [[멕시코]] 대마공장에서 일하는 조선 노동자들이 심한 학대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중단시켰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은 하와이에서 [[일본인]] 노동자들이 조선 노동자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을 염려한 [[일본 정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가 이루어졌고 암울한 시대상황과 맞물려 독립운동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도산 [[안창호]]의 '도산(島山)'은 하와이를 의미한다. 1910년대 이미 협성협회와 이를 승계한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혈성단, 실지회를 비롯한 두 자릿수의 독립운동단체가 활약했으며 [[1914년]]에는 [[박용만(1881)|박용만]]을 단장으로 대조선국민군단(大朝鮮國民軍團)이 창설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거점이자 말년에 여생을 마친 곳도 이곳이다. 한편 하와이 인구의 1/4을 차지하는 백인의 경우는 미국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취급이 나쁜 곳이 하와이이기도 하다. [[하와이#s-14.2|'폐쇄성' 문단]] 참조. 의료보험 제도가 나쁘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https://hmsa.com/|HMSA]]라는 하와이 지역 의료보험과 [[https://www.hawaiidentalservice.com|HDS]]라는 치과보험이 압도적으로 좋다. HMSA는 본래 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출발/성장한 의료보험 회사인데, 당시에는 현지 [[의료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사실상 [[독과점]]을 하게되어 어쩌다보니 미국 본토에선 존재도 하지 않는 보편적 건강보험이 되어버린 보험회사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보장이 괜찮은 편이며, 하와이 내 모든 병원이 취급한다. HDS는 하와이 내 [[치과의사]]들이 연합해서 만든 보험인데, 직장인이라면 월 5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온 가족이 1년에 작게는 $1,500부터 $3,000까지 커버되며 여기에는 심지어 [[임플란트]]도 대상에 포함되어있다. [[엑스레이]], 클리닝 등 무료 진료 서비스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어 하와이 내에서 직장을 다닌다면 [[치과]] 때문에 한국을 갈 필요가 없을 정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