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자르 (문단 편집) == 성립 및 발전 == 하자르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점이 많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자르를 구성하는 민족들이 투르크 계열 민족들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이들은 6세기 말에 카스피해 연안 또는 캅카스 지역에서부터 아조프해 스텝 지역으로 진출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서돌궐의 세력이 강력하여 서돌궐의 종주권 아래에 있었다. 626년 동로마의 황제 이라클리오스 1세는 북동 국경을 지키기 위해 하자르와 동맹을 하였다. 동로마는 하자르와 함께 사산 왕조의 지배하에 있던 캅카스 지역을 공격하였다. ([[로마-페르시아 전쟁]]) 630년 즈음을 전후하여 서돌궐의 세력이 사라지고 하자르는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들의 지배계층은 주로 [[서돌궐]]의 귀족층, 특히 왕족의 경우 서돌궐의 왕족인 아사나(Ashina) 씨족인 것으로 여겨지나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학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간에 하자르가 건국 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서돌궐의 구성원이었음은 여러 증거를 보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이는데, 이 관계는 [[돌궐]]의 계승분쟁을 시작으로 657년,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의 공격으로 [[서돌궐]]이 소멸해버리며 크게 요동치게 된다. 가장 극적인 상황은 그 직후에 일어났다. [[볼가강]] 서쪽과 [[크림반도]] 북쪽에서 [[불가르]] 족의 지배가문인 둘로 일족(Dulo clan)의 수장, 쿠브라트(Kubrat)가 [[불가르 칸국|대 불가리아 연합]](Old great bulgaria)을 선포한 뒤 공격적인 확장을 시작했고, 이슬람 왕조의 북상은 초원을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하자르는 당연히 초원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자 불가르족, 그리고 이슬람 세력과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쿠브라트의 아들들이 각각의 세력을 이끌고 유럽과 초원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 끝나게 된다.[* 이때 흩어진 아들들 중 2남 코트라그(장남 바트바얀을 축출)가 이끄는 세력은 볼가 강과 카마 강이 만나는 지점까지 북상하여 훗날의 볼가-불가리아를, 3남 아스파루크가 이끈 세력은 다뉴브 강 남쪽으로 도피하여 그곳의 [[슬라브|슬라브족]]들과 연합해 훗날의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기틀을 다진다.] [[이슬람]]과는 그 후로도 약 백여 년간의 전쟁을 이어갔다. 하자르는 이 과정에서 독립 왕조이자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굳힌 것으로 추정된다. 하자르 칸국은 유목만 한 것이 아니라 [[밀]]과 [[수수]]를 경작하였으며, 여러 소도시에서는 다양한 종교를 믿는 상인들이 각기 따로 거주하는 구역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자르 칸국에서는 주민들을 서로 다른 관습법에 따라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끔 종교 별로 법정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 유대교인, 무슬림, 기독교인, 토착 텡그리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판사의 재판 주재 하에 분쟁을 조정할 수 있었다. 하자르 칸국의 도시에는 [[유르트]]를 본뜬 반구형 지붕의 목조 건물들이 들어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