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판락 (문단 편집) == 해방 후 == >'''그를 만나면 직이뿌라(죽여 버려라). 그는 사람이 아니다. 인두껍을 쓴 짐승이다.'''[* 하판락의 착혈 고문을 폭로한 이광우 선생이, 아버지의 독립운동을 인정받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려는 목적으로 하판락을 만나러 간다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해방이 되었음에도 친일 경찰 하판락은 '오히려' 더욱 잘 나갔다. 해방 후에도 하판락은 미 군정의 '일제 관리 재등용 정책'에 따라 여전히 경찰로 근무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인 적산 재산 처리에 관여하며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46년 6월에는 경남 경찰청 수사과 차석으로 승진했다. 그러한 하판락에게 잠시나마 역사적 단죄가 찾아온 것은 1949년이었다. 하판락의 고문으로 순국한 독립투사 여경수의 어머니가 그를 고발하여 부산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게 체포된 것. 1949년 당시 [[고원섭]]이 쓴 <반민자 죄상기>에 따르면, 하판락을 체포한 반민특위가 그를 서울로 압송하려 하자 부산 시민들이 '''당장 여기서 우리들이 처리하겠으니 맡겨 달라'''며 애원했을 정도로 하판락에 대한 분노가 충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서울로 압송된 하판락은 반민특위로부터 강도높은 조사를 받았으나, 하판락은 자신이 저지른 독립투사 살해 및 착혈 고문 사실 등을 끝끝내 부인했다. 그러다가 1949년 6월 6일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반민특위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결국 하판락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1956년 경남도의원 선거에 하판락은 고향인 명석면으로 돌아와 출마했지만, 당시 막강한 하씨 문중의 영향력과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면민들과 유권자들은 그를 낙선시켰다. 이후 부산시의원에 도전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했다. [[파일:external/imnews.imbc.com/DN20020071-00_01340003.jpg]] 결국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형성한 재력을 가지고 금융업자로 변신, 신용금고를 설립[* 아직도 하판락의 후손이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으므로 직접 언급은 힘들지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로 검색해보면 이름이 나온다. 설립 시기는 1972년이지만, 기사는 1973년도로 나온다. 다만 그 신용금고는 90년대 말에 다른 신용금고로 흡수돼서 지금도 하판락 일가와 연관이 있는지는 의문이다.]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모았고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자리잡았다. 이 돈으로 고향에 기금을 희사하거나 기부금을 내는 등 생색을 냈고, 부산에서는 부산시장에게서 표창을 받는 등 노인복지 공로자로 신분세탁을 제대로 했다. 이후 2003년 9월 향년 91세의 천수를 누리며 살다가 죽었다. 그는 2002년 2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친일파 708인 명단을 발표할 당시 명단에 든 대상자 중 생존해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하판락의 친일 행적은 독립투사 이광우의 증언으로 다시 한 번 까발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광우 선생이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되고, 건국훈장 애족상을 받으면서 하판락의 평판은 다시 한 번 추락했다. 친일 죄상과 고문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국민적인 공분과 비난 여론이 불같이 타오르자, 하판락은 2000년 1월 17일 정운현 [[대한매일]] 기자와의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00117025005|인터뷰를 통해]] "일경의 간부를 지낸 과거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나로 인해 피해를 본 분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며 마지못해 잘못을 시인했다. 2002년 3월 10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53년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 편에서도 얼굴을 비췄다. 같은 해 12월, 하판락의 고향 명석면에서 발간된 <명석면사>에서 이 자의 집안인 '''진주 하씨''' 문중의 반발로 하판락의 친일 죄상이 모조리 삭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명석면사를 쓴 김경현이 밝힌 바로는, 하씨 문중이 마을회관으로 자신을 불러서는 "무슨 근거로 그렇게 썼냐. 근거를 대라.", "하판락은 단지 경찰이었다. 고등계 형사가 아니다.", "광주 놈이라 경상도를 저렇게 쓴다.", "외지인 주제에 지역사정을 뭘 안다고 그렇게 막 쓰냐."는 등의 망언과 비난을 해댔다고 한다. 결국 <명석면사>에서 하판락에 대한 내용은 삭제되었지만, 김경현은 편찬 후기에 '''명석면 출신자 중에 반민특위 관련자에 대해서는 면사편찬위의 결의로 삭제했다.'''라고 적어 시간차 공격을 날렸다. 진주 하씨 일동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는 펄펄 뛰었지만, 책은 이미 인쇄가 끝난 뒤였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