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프시코드 (문단 편집) == 역사 ==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까지의 서양 [[음악]]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피아노]] 등장 이후 쓰이지 않게 되었다. 건반을 누르면 촉이 현을 뜯으며 소리를 내는 발현악기에 속하는데[* 그래서 소리를 들어 보면 [[클래식 기타]] 소리가 난다.], 이런 매커니즘으로는 '''강약의 조절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런 약점을 스톱 장치에 의한 음색의 가변성으로 커버한다. 여러 스톱을 사용하기 위해 건반이 2단으로 된 것도 있다.] 17세기 후반이나 18세기 초반에는 3단 하프시코드도 나와서 강약 조절이 굉장히 섬세해졌으나 이미 시대의 흐름은 돌이킬 수 없어서 결국 사장되었다. 유럽 중세 시대 후기에 개발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서양음악사에서 하프시코드의 등장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문헌상으로는 1425년의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16, 17세기에 최전성기를 맞이하지만 18세기에 들어 개발된 [[피아노]]가 강약의 조절이 가능하고 대형 콘서트홀에서도 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음량이 커서 급속히 보급되는 바람에 주역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음악의 대중화 열풍이 커지면서 건반악기를 배우려는 바로크 작곡가들이 하프시코드 연주자의 재량에 맡기는 [[통주저음|숫자저음]](일종의 [[애드립]])기법을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연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더욱 입지가 좁아졌다. 게다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글루크]]의 오페라 개혁 이후, [[오페라]]에서 [[레치타티보]] 반주를 하프시코드와 첼로 등의 최소한의 [[통주저음]] 편성으로 하던 관행이 [[관현악]] 반주로 바뀌면서 그 입지가 멸종되어 버렸다. 결국 [[모차르트]]는 초기에 하프시코드용 작품을 쓰다 후기에는 피아노로 옮겨 갔고, [[베토벤]]은 처음부터 피아노만을 건반악기로 쓰는 식이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 하프시코드는 몰락과 부활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1812년 [[바흐]]의 손자 빌헬름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바흐가 초대된 바흐 기념 음악회 이후 하프시코드는 완전히 잊히다 1882년에 들어 다시 쓰이기 시작했으며, 20세기 초중반의 [[아놀드 돌메치]], [[반다 란도프스카]] 등의 활약이나 20세기 후반부터의 [[시대연주]] 붐 등으로 본격 부활에 성공했다. 그러나 후대에 나온 피아노가 서양 음악계의 주도권을 크게 잡고 있는데다 실물 하프시코드는 아주 비싸고 제작, 판매, 조율 등 여러 문제가 있어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전성기와 같은 수준의 지위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 내의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기본형 신품이 1단식은 160만 엔에서, 2단식은 260만 엔부터 시작하며, 가격은 주문사양에 따라 크게 올라간다. 물론 100만 엔대를 밑도는 1단식의 신품도 있긴 하지만, 직접 자동차를 몰고 가서 인도하는 조건의 가격이며, 표면의 장식 등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전공자의 입문을 위해서 만들어진 최염가제품이다. 옵션 가격은 당연히 별도이고 이것 저것 붙이면 결국 100만 엔대 중반 또는 그 이상까지 상승한다. 게다가 전공자 혹은 숙련자의 수가 피아노보다 훨씬 적어서, 레슨을 찾는 것도 어렵고 비용도 엄청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