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후패 (문단 편집) == 평가 == 아버지 [[하후연]]과 비슷한 스타일의 맹장으로 자오 전투 당시 위협에 빠지자 녹각에서 몸소 싸우며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용맹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하후연이 [[한중 공방전]]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고려하면[* '''몸소 녹각을 점검하다가''' [[황충]]의 기습을 받고 죽었다. ] 아버지의 죽음을 [[반면교사]]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의 똑같은 행동을 보이다가 스스로를 죽을 위기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비판할 수 있다. [[촉한]]에 투항한 이후에 [[장억]]과 [[강유]]와 친목을 도모하는 등 원수의 국가에서 놀라울 정도로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255년의 북벌에 참전해서 정확한 역할을 알 수 없지만 촉한 역사상 최대의 승리에 공헌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 무렵 인재풀이 굉장히 부족했던 촉한에게 255년의 북벌 이외의 전쟁에 참전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하후패는 244년의 흥세 전투 참전으로부터 시작해서 247~248년에 이르는 강유의 북벌을 저지하는 데 비록 미끼였지만 일조하고,[* 곽회는 강유가 반드시 하후패를 공격해 올 것이므로 풍중으로 들어가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하후패를 맞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곽회전) ] 그 후 255년의 북벌에 참여하는 등 파란만장한 경력을 자랑하는 장수다. 기록이 워낙 부족해서 뛰어난 무력을 제외하면 정확히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개인적인 면에서 촉한에 엄청난 증오심을 가졌던 인물이 여의치 않은 정치투쟁으로 아버지를 죽인 나라에 투항해 중진 행세를 해야 했다는 점은 굉장히 불우하다고 할 수 있다. [[위(삼국시대)|위나라]]에서 오랫동안 종군했으나 기록이 부족한 것은 투항의 영향일지도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