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후패 (문단 편집) === 촉의 중진 === 『위략』에서는 하후패의 투항 과정이 상당히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남쪽으로 음평(陰平)을 넘었다가 길을 잃었는데 양식이 떨어져 말을 죽이고 도보로 걸었다. 다리를 다쳐 바위 아래에 누워있는데 길을 찾아보았으나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촉이 이를 듣고 사람을 보내 하후패를 영접했다. 『[[삼국지연의]]』의 경우에는 간단하게 하후패가 [[강유]]에게 투항했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끝마치지만 오히려 정사의 기록이 더욱 처절하다. 권력 투쟁에 밀려 아버지와 동생을 죽인 원수의 나라에 투항해왔음에도 양식이 없고 길을 잃은 데다가 끝내 다리를 다쳐서 바위 아래에 누워있어야 했다. 당시 기분에 대한 서술은 없지만 표현할 수도 없이 굴욕적이고 착잡했을 것이다. 다행히 촉은 그를 찾아내 따뜻하게 맞아주었지만 1년 전까지도 칼을 맞댔던 가문의 원수에게 이런 대접을 받았으니 기분이 매우 복잡했을 것이다. 촉이 하후패를 받아들인 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한나라]]를 창건한 [[한고조]]의 개국공신 [[하후영]]의 후손이 한나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유비]]는 [[전한]] [[한경제]]의 후손으로[* 전한 5대 황제 경제는 4대 문제의 적장남이었고, 문제는 고조 유방의 4남이다.] [[위나라]]에 의해 [[후한]]이 멸망하자 스스로 한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한나라라고 칭했고, 스스로를 한나라의 정통을 이었다고 여겼다. 두 번째는 [[유선(삼국지)|유선]]의 아내 [[경애황후 장씨|경애황후]]와 [[황후 장씨|장황후]]의 아버지인 [[장비]]의 처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장비는 과거 [[유비]]가 [[조조]]에게 귀부하던 시절 [[조조]]가 장비를 끌어들이고자 [[하후연]]의 조카딸 [[하후씨]]와 혼인시켰고 유선의 아내였던 [[경애황후 장씨|경애황후]]와 [[황후 장씨|장황후]] 모두 [[하후씨]]의 딸이라서 이들의 [[당숙]]이 된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야사가 있는데, 장비가 어느날 길을 가다가 빨래를 하고 있는 소녀를 보고 납치해서 아내로 삼았는데 이 소녀가 하후씨라는 것이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장비는 하후씨 집안의 여성과 정식으로 혼인을 한 것이지만 이후 조조의 가장 큰 적이 되었으므로 이런 식으로 말을 흐린 것.] 한편으로는 평소 숙지해 둔 지형정보, 강한 체력, 여분의 [[말]], 시종, 돈, 의복, 식량 등 급한 와중에도 꽤 준비를 하고 탈출하였을 고위급 군인이자 귀족인 하후패조차 길을 잃고 목숨을 잃을 뻔할 정도로, 음평과 [[검각]], 구체적으로는 최고 해발고도가 3,767m에 이르는 [[https://ko.wikipedia.org/wiki/%EC%B9%9C%EB%A7%81%EC%82%B0%EB%A7%A5|진령산맥]]이 얼마나 극한의 지형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하후패의 촉 내에서의 중요 활동은 총 4개를 꼽을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