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후현 (문단 편집) == 야사 == 하후현은 당대의 명사이자 인품과 학식, 외모[* 세설신어에서 하후현에 대해 '마치 해와 달을 품은 듯 낭랑하다(朗朗如日月之入懷)'라는 문구가 있는데 '日月入懷'가 자체발광 미남을 뜻한다.[[https://www.zdic.net/hans/%E6%97%A5%E6%9C%88%E5%85%A5%E6%80%80|#]]]가 뛰어난 인물이었던 만큼 그와 같은 편이 아닌 정적들 가운데서도 그를 흠모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많은 일화나 그에 대한 야사가 전하고 있다. 이원에는 하후현의 죽음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하후현이 [[사마사]]에게 죽은 후 친척들이 제사를 지내주었다. 제사 도중 하후현이 나타나 제사상 머리에 앉아 잘려진 머리를 옆에 놓고 목구멍으로 음식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방금 [[옥황상제]]에게 청하여 사마사에게 후손이 없게 했다고 말했는데 그 후 정말로 사마사의 후손이 없었다고 한다. 원혼지[* 원혼지라는 건 육조시대 안지추가 지은 책으로 이 책의 이야기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혼의 복수로 인한 권선징악'이라는 구조이다. 삼국시대에서는 하후현, [[왕릉(삼국지)|왕릉]] 외에도 [[제갈각]] 등의 이야기가 있다.]에 따르면 여기에 추가로 얘기가 더 붙는데 [[영가의 난]] 때 어느 무당이 사마의를 보았는데 사마의가 울면서 말하길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은 조상, 하후현이 원한을 하소연해 한풀이를 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어림에 의하면 하후현이 위나라 황제를 따라 어릉에 참배하러 가 소나무와 측백나무 아래 배열해 서 있을 때, 폭우가 쏟아져 나무가 벼락에 맞는 바람에 관이 그을려 망가졌다. 좌우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놀라 엎드렸지만 하후현은 안색조차 변하지 않았다. 어람에는 명제 조예가 하후현과 자신의 처남 모증을 함께 앉게 했더니 사람들이 갈대(모증)에 옥수(하후현)가 기대었다고 하였다. 속담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사마사]]가 하후현을 주살하려고 할 때 뜻을 정하지 못해 숙부 [[사마부]]에게 하후현에 대해서 "나의 재주로 족히 (하후현을) 제압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사마부가 [[조엄]]이 자식의 장례를 치를 때를 언급하며 "네가 거기에 왔을 때 좌중의 절반만 일어섰지만 '''하후현이 왔을 때는 전부 일어섰다''', 너는 하후현보다 못한 거 같다"라고 했다. 사마사가 이를 듣고 하후현을 주살했다.[* 사실 이 일 없어도 사마사가 수십년 전부터 하후현을 죽이려는 마음을 품었을 확률은 농후하다. 하후현의 여동생이였던 자기 첫째 부인 [[하후휘]]를 죽인 게 사마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