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학교폭력/오해 (문단 편집) ===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폭력적인 오락 매체가 원인]]인가 === 폭력적 매체와 폭력성의 인과관계는 [[심리학]]계에서 거진 50년 동안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떡밥]]이다. 이에 대해서는 [[관찰학습]] 문서 및 [[게임 중독]] 문서를 참고할 것. 연구 내적으로는 가상매체 속 폭력에 대한 무감각성이 실제 폭력성으로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관되는지에 대한 타당성의 문제가 있고, 연구 외적으로는 정히 그렇다고 치더라도 과연 이 주제가 "학교폭력" 이라는 한정된 케이스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타당성의 문제가 있다. 물론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의 경우에는, 이를 [[실험]]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일선 연구진들을 모독하는 것에 가깝다. 적어도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아직 어느 쪽으로도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라는 쪽으로 일반화 및 적용하려는 일부 인사들이나 시민단체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으로서의 학교폭력, 왜곡된 사회의 부조리가 여실히 반영되는 현상으로서의 학교폭력이라는 문제를 깔끔하고도 손쉽게 "폭력적 매체" 라는 원인으로 돌리려는 지적 안일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끝내면 학교폭력은 너무나 단순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비판하는 측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폭력적 매체에 원인을 돌리는 측도 제정신 박힌 사람들은 이게 영향을 끼친다는 거지 이게 원인의 전부라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환경적 요인만 따져보더라도 영아기의 양육(child-rearing) 같은 변수부터 시작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경제적 지위(SES),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적 호위대(social convoy) 모델, 청소년 소집단의 또래문화, 지역사회 및 [[학교]]의 역할과 청소년 비행에 대한 관습적 대처방식, 교내 문제에 있어서의 [[교사]]의 임파워먼트, 지역 치안 환경, [[소년법]]과 같은 법적 환경, 청소년[[정책]]의 효과성, 당국의 교육철학 등등...작정하고 따지고 들어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 매체"가 인과성이 입증된 변수라고 하더라도 변수가 너무나 많아서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면, 폭력적 매체가 인과성이 입증된 변수면 당연히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타당한 구석이 분명히 있다. 2000년대 이후의 학폭에서 게임은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물론 '게임을 하고 나니 사람을 때리고 싶어졌다.' 식은 아니고 게임이 연관된 사건이 학폭에서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게임 캐릭터를 키워놔라.', '폰 게임 할 거니까 [[와이파이 셔틀]]해라.', '게임 캐쉬 충전할거니까 문화상품권 내놔.' 등이 있다. 즉 게임이 학폭에서 '착취'의 한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게임의 문제점이 뭐냐면, 게임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고 어느 순간부터 노가다성 요소로 충만해졌기 때문에, 과거라면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헤어지고 나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현재는 끊임없는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옛날에도 있던 숙제 셔틀 같은 경우 그냥 숙제 하는 김에 시간 더 들여서 조금씩 바꿔 써서 숙제 하나를 완공하면 끝나지만 게임은 끝이 없다. 이건 분명히 게임의 잘못은 아니지만, 노가다성 온라인 게임 핸드폰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 중 하나다. 90년대에서 00년대 초까지 유행하던 철권이나 kof나 위닝, 피파, 스타크래프트 등은 아무리 대신 시켜봤자 피해 학생의 실력만 늘어나지 별 의미가 없다. 학교폭력의 원인을 폭력적 매체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도 타당하지 않다고도 말하기 어렵지만, 있어 봤자 그 영향력이 크지 않은 시점에서 가장 큰 부작용을 심하게 말하자면 그 정보의 수용자들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맘에 들지 않는 젊은 놈들 욕이나 이참에 한 번 더 하고 잊어버려야겠다" 정도의 감정을 갖고 있다. 이 문서에도 조금 서술되어 있지만 한국의 사회문제에 관해 괜히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쓸데없이 별 관련도 없는 일본이나 유교 같은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화풀이용 샌드백이 그 원인이므로 제거해야 된다고 실컷 때려놓고 아 정신적으로 속 시원하니 잊어버려야겠다 하며 돌아서는 정도의 효과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폭력적 매체에 관심을 쏟는 것에 관해 그 기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렇게 매체가 사람의 심신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사고는 전통적으로 미학의 영역이라는 설도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을 제외한 한자 문화권은 매체가 사람의 심성에 끼치는 영향을 중요시하고 높게 봤다. 법치를 낮게 보고 덕치를 높이 보며, 교화를 최고의 수단으로 생각했으며 그 수단이 바로 노래와 소설류 같은 예술매체들이다. 한자 문화권은 이와 같은 예술 매체를 관이나 학에서 알맞은 방향으로 통제하는 것을 통해 백성들의 심성을 잘 갈고 닦아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다시 말하면 심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예술 매체는 전통적으로 처벌과 검열의 대상이었다. 이를 또 다시 말하자면, 예와 술에 속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도를 향한 부속품 정도로, 심성을 아름답고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예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존재가치에 대해서는 아예 인지 자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전면 부정하는 지극히 실용적인 미학관이다. 요러하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매체를 대하는 자세는 지적 안일함도 아니고, 00년대 들어서 게임이 학교폭력의 주된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이고 수준 높은 미학관에 근거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이 한자 문화권의 깊은 전통 속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의식하고 검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은. 한국은 전통적으로 높은 인문학 수준을 유지했지만 동양철학 기준이고 일제 강점 이후 서양 철학과 인문학의 발달은 답보 수준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미학관의 수입 대신 전통적인 미학관을 고수하는 가운데 기독교, 그중에서도 장로교 윤리관을 조금 도입한 상태에서 검열과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조금 무리한 해석이다. 서양에서도 [[스테인드 글라스]]의 사례처럼 종교적, 사회적으로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았으며 의외로 1950년대까지는 영화나 만화 검열 수준도 서양이 동양보다 낫다고 할 처지조차 못되었다. 서양에서 현재와 같은 미학관이 갖춰진 것은 68혁명으로 일컬어지는 1960년대의 급진적인 사회 변화 탓이 크다.] 결론적으로, 학교폭력의 실체와 실태를 정확히 알려줌으로써 시각을 넓히고 문제의 다층적인 복잡성을 이해시키는 것은, 학교폭력을 "[[편견 및 고정관념|폭력물에 빠져 버린 일부 문제아들의 개인적인 문제]]" 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사회의 일원인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란 결론에 닿는다. 학교폭력이 일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다만 학술적인 문제를 떠나 실질적으로 게임이나 영화, 격투기 장면 등을 따라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사례가 분명히 존재하긴 하며[* 영등위의 등급 분류 기준 중에도 엄연히 '''모방 위험'''이 존재한다.], 국가에 따라서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현실을 들어 미디어에 대한 검열 및 통제가 옳다고 보는 여론이 대다수다. 물론 없애다시피 심해서는 안되겠지만. 폭력적인 매체를 따라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이 계속 발생한다면 이러한 여론이 쉽게 수그러들기는 힘들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