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광복군 (문단 편집) ==== 조선의용군(연안파) 학병 출신 회고록 ==== '''신상초(申相楚), 탈출: 어느 자유주의자의 수기, 태양문화사, 1977.''' 신상초(1922~1989)는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간 중국에서 탈출한 뒤, 중국 공산당 신사군에 합류하여 연안으로 떠났고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 항일운동을 하였다 '''嚴永植, 탈출: 죽어서야 찾은 자유, 야스미디어, 2005.''' 엄영식(1920~2004)도 신상초와 비슷한 경력을 갖고 있는 인물로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 徐州로 파견되었다가 그해 8월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에 편입되었다. 그는 신사군 게릴라 지역을 20여 일 동안 걸어 조선독립동맹에 들어가 최용건, 김무정 등을 만나고 항일군정대학에서 문화교육을 강의했다. 두 사람은 모두 해방 후 공산당 군대를 이탈하여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곧 월남했다 '''鄭哲洙(高哲), 나의 청춘, 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3''' 정철수(1923~1989)의 경우에는 해방 이후 중국에 잔류했던 경우로 주목된다. 그도 1944년 졸업을 앞두고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중국으로 끌려갔다. 그해 3월 중국 산동성 제남의 일본군 훈련소에서 탈출하여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에 가맹하여 高哲의 이름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해방 이후 그는 귀국하지 않고 연길현정부 교육과장, 길림중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는 등 교육계에 종사했으나 김학철처럼 문화대혁명 시기 수난을 당했다.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뒤 연변대학교 일문과 교수로 재직했다가 1985년에야 한국으로 영구 귀환했다. [[분류:한국광복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