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교원대학교부설고등학교 (문단 편집) ==== 개교 초기의 기숙사(예절실) ==== 개교 초기에는 별도의 기숙사 시설이 없었다. 이는 개교 후 6년여 정도까지 유지되었고 개교 6년차였던 1998년에 한솔관을 준공하여 여자 기숙사가 생기게 되었다. 이 한솔관이 생기기 이전에는 3층 가장 구석(담임실 옆, 메인 교무실 윗 층)에 예절실이라는 온돌방이 하나 있었다. 이 예절실은 학교 입학생은 누구나 수료해야만 하는 예절 교육(한복 입기, 절하는 법, 차례법 등)을 진행하기 위한 시설로 교실 하나 정도 크기의 온돌방 + 탕비실 + 옷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최초 개교 시 주변 지방의 유망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진천 등에서 청주로 진학하던 우수 학생들을 영입(중학생)할 수 있었는데, 이 학생들의 유인책으로 예절실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예절실(기숙사)의 시작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커다란 온돌방이 전부이기 때문에 온돌방을 빙 둘러 폭 50cm 정도의 공간을 남기고 테두리를 설치한 후 그 빈 공간에 예절실 입소생들의 캐비넷을 설치하고 온돌방과는 커텐으로 단절된 상태를 유지하여 주말에 예절 교육을 할 때 '''여기가 야매 기숙사입니다''' 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옷방에는 이불장이 설치되어 있어서 취침 시간 (10시 이후부터) 이 되면 온돌방이 가득 찰 정도로 요와 이불을 펼쳐두고 약 15명 정도의 인원이 수면을 취하는 구조였다. 꽤나 넓은 공간이라 수용 인원에 비해 쾌적한 편이었으며 (여름에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 겨울엔 온돌방에 전기 난방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자다가 요에서 벗어나 맨 살이 바닥에 닿게 되면 저온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예절실 입소생들 어머니를 중심으로 별도 어머니회가 결성되어 매주 1회 저녁에 치킨, 피자, 빵 등의 부식 타임이 있었으며 별도의 냉장고가 구비되어 있어서 김치나 밑반찬들을 쟁여놓고 사발면이나 햇반 등과 같이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후술되는 별도 기숙사의 시스템과 비교하면 너무나 열악하지만 나름 여러 추억을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녀 시설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여학생의 출입은 불가하였으며 흔히들 상상할 수 있는 폐쇄된 공용 공간에서의 로맨스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양호시설이 충분치 않았던 학교 시설 탓에 장기간 휴식을 취해야 하는 여학우들이 있을 경우 교사 조치하에 여학생이 예절실에서 쉬는 케이스가 있기는 하였다.[* 극소수의 입소생들이 금녀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찬 같은 반 여자 사람 친구들을 대동하여 예절실 투어를 하다가 걸린 적은 있다.] 최초 예절실은 3회 졸업생이 입학한 1996년까지 학년 당 5-6명의 먼 지역의 성적 우수자들 위주로 폐쇄적으로 선발되었고 그 결과 96년 기준으로 1학년은 1명만 선발된 상태였으나 97년부터는 거주 지역과 무관하게 남학생 성적 우수자들을 줄 세워 선발 후 입소 여부를 확인하였고 그 이후로는 매 학년 성적 우수자들에 한해서 입소되어 학년 당 보통 5명의 학생들이 수용되었다. 예절실 학생들은 주말을 제외하면 예절실에서 생활 하였고 식사는 학교 구내 식당에서 해결하였으나 구내식당의 퀄리티가 심히 좋지 못하여 몇몇 학생들은 교원대학교 교수 식당 등을 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예절실은 매 해 3학년 남자 담임 중 한명이 담당으로 학생들을 관리하였고 3학년 학생 중 한 명이 예절실장으로 책임을 지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재학생 대부분은 예절실 입소를 부러워하는 편이었는데 이유는 각기 달랐다. 운동에 미친 듯 빠져 사는 대부분의 남고생들은 언제나 샤워할 수 있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환경을 부러워하였고 공부를 너무 좋아하는 소수의 아이들은 12시 도서관 폐관 시간이 되어도 남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절실 입소의 영향으로 단정짓긴 어렵지만 계열 내 전교 등수는 소수의 여학생들을 제외하면 예절실 출신 학생들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로 인한 차별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곤 하였다. 예절실의 특성 상 남학생만 수용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여학생 및 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었고 이로 인해 여자 기숙사를 별도로 건립하기에 이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