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방송공사/역사 (문단 편집) === 선거 개표방송(1987~) ===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6.29 선언과 민주화가 이루어지며, [[대통령]]도 직선제로 선출하게 되었다. KBS는 이 헌법 개정 국민투표 및 대통령 선거에 대한 개표방송을 실시간으로 진행했으며, 대한민국 국민은 처음으로 영국,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방송을 통한 실시간 개표 중계"를 접하게 되었다. KBS의 경우는 [[박성범]] 앵커([[http://www.mediatoday.co.kr/news/photo/200912/84533_90984_4224.jpg|사진]][* 해당 캡처사진은 대선 하루 전 [[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3676944|보도 영상이다]].]/당시 보도본부 부본부장, 前 한나라당 국회의원)가 진행했으며 다음날 낮 12시까지도 개표방송이 진행되었다. 본관 내에 특설 스튜디오까지 차려가며 실시간으로 개표를 중계했다.([[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3676971|당시 영상]])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1번 [[노태우]]부터 8번 [[백기완]] 후보까지 총 8명의 후보가 있었지만, 전광판에는 5번 이하 군소후보는 의미없다 생각해서였는지[* 그마저도 5번 [[홍숙자]] 후보는 등록무효, 6번 김선적과 8번 [[백기완]]은 도중에 사퇴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군소후보는 7번 [[신정일]] 밖에 없었다.] 1번 [[노태우]], 2번 [[김영삼]], 3번 [[김대중]], 4번 [[김종필]]까지밖에 안 나왔다.[* 실제로 1백만 표가 넘는 득표를 한 후보들은 이 4명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 개표방송은 '전파낭비 방지' 명목으로 [[MBC]]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121700209210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12-17&officeId=00020&pageNo=10&printNo=20372&publishType=00020|동시방송]]을 했다. ~~동시방송이 더 전파낭비 같은데~~ 하지만 100% 공동중계는 아니었고 시간대에 따라 KBS에서 진행하다가 MBC에서 진행하다가 하며 화면이 왔다갔다하는 모양새였다. MBC의 개표방송은 당시 MBC 뉴스데스크가 진행되던 여의도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https://youtu.be/ISo61TT7YiE?t=28|#MBC쪽 영상]] 여기서도 KBS와 똑같이 배경에 전광판을 놔두고 진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1988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32400209212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3-24&officeId=00020&pageNo=12&printNo=20453&publishType=00020|총선 개표방송]]때부터는 따로 방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1987년 대선 개표중계 방송은 컴퓨터 조작설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유인즉 타 후보는 정상적으로 표가 늘어났는데 유독 특정후보의 표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현상 때문이었다고. 덕분에 13대 국회에서 조사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수였다는 결론만 난 채 흐지부지되었다. 이후 1992년 총선과 대선에서 KBS1은 무광고로 개표방송을 진행했고[* KBS1의 상업광고는 1994년 폐지되었으니 이 때는 광고가 편성되던 시절이다.], [[15대 총선]] 개표방송에선 (당시로서는)나름대로 파격적으로 6시가 딱 되자마자 바로 지역구 당선자 예측보도를 했다. 하지만 KBS는 그 예측조사가 빗나가면서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1997년 [[15대 대선]]개표방송때는 NHK BS-1이 KBS의 개표중계를 생방송으로 받아 내보냈다. 당시 붙었던 후보는 이회창-김대중-이인제 후보. 이 방송에서 KBS는 전 보도국 기자들에게 PDA단말기를 들려 현장으로 보내고[* 2010년에는 전 직원에게 갤럭시 스마트폰을 뿌렸다. 덕분에 KBS 보도국에서 트위터를 하는 사람들이 대폭 증가했고, KBS는 2010년대 초반에는 트위터 제보가 가장 활발한 방송사였고 KBS 뉴스라인 등에서는 시청자 의견을 모아 방송도 해 줬다. 심지어 시민기자상이라고 해서 상도 줬다! 지금은 다 지나간 얘기지만.] 그래픽실에서는 소위 '주유소 미터기' CG를 선보여 타 방송사 싸대기를 때렸다. 하지만 MBC에서 6시 시보 직후 발표한 예측조사[* 당시 한국갤럽에서 조사했고, 그 내용을 보면 김대중 39.9% 이회창 38.9% 이인제 19.6%로 나왔다.]를 발표한 게 맞아떨어져 KBS에서 아쉬워했다는 후문이 있다. 선거운동 기간중에 (여론조사 상으로)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간의 접전이 계속 이어지자 15대 총선 예측조사의 악몽을 기억하던 당시 방송3사에서 협의를 해서[* 말이 협의지 사실상 KBS와 SBS에서 MBC한테 예측조사를 보도하지말라고 요구한 식이었다.] 예측조사를 보도하지 말자라는 결의를 냈는데, 선거날 당일 MBC에서 이 결의를 어기고 예측조사를 발표했고 그대로 적중하고 만 것이었다. 이에 KBS와 SBS는 노발대발하면서 MBC를 까는 보도를 하고 이득렬 당시 MBC 사장이 사과하면서 이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2000년대 들어 KBS1의 선거방송은 타사 대비 유의미하게 높은 시청률을 계속 기록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광고 없이 이어서''' 중계한다는 점이 매우 큰 것으로 여겨진다. 이외에도 KBS는 타사보다 좀 차분하게 방송하기도 하고, BBC의 선거방송인 Election Night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는 등[* 심지어 2012년 대선에서는 한국 실정에 별로 안 맞는 Swing-O-Meter도 도입한 적 있다. 이건 대선보다는 양당제 비스무레하게 갈라진 지형의 총선에 더 어울리는 지표다.] 선거방송기획단을 빡세게 꾸려서 대응한다. 다만 MBC, SBS 등 후발주자들이 화려한 볼거리 많은 선거방송을 기획하고 시청자들에게 "약 빤 방송'이라며 반향을 크게 얻자, KBS도 대선주자 마라톤 같은 풍자형 징글을 도입하는 추세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