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불교태고종 (문단 편집) === 일제강점기 === 현대 한국 태고종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 불교]]는 [[조선총독부]]의 사찰령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사찰령은 이른바 [[승려]]들의 활동부터 주지 임명까지 전부 [[조선총독]]이 관리하고 "기혼자"에게 절의 주지 역할을 맡기도록 했다. 이때 임명된 주지들은 전부 [[일본인]] 아니면 결혼한 대처승이었다고 한다. 또 1930년경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절(불교)|절]]인 박문사(博文寺)를 건축하고 모든 불교의 총본산으로 하려는 야욕을 드러낸다. 그러자 한국불교 중 뜻있는 인사들은 이를 저지하려고 했고, [[1935년]]에 [[한용운]]과 [[해인사]] 주지 회광, [[마곡사]] 주지 [[만공]] 등이 주축이 되어 '31본산주지회의(30본산 + [[화엄사]])'를 열고 총본산 설립과 '조선불교선교양종종무원'이라는 대표기관의 구성, 각황사 교당 개축을 결의한다. 이에 1937년에 커다란 [[보천교]] 십일전 건물을 매입하여 각황사 옆자리에 새로 절을 건축하고, [[1938년]]에 완성하자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여 태고사라고 개칭하였다. 한국 조계종의 중흥조(中興祖)인 [[보우(고려)|보우]] 태고국사를 모시던 태고사를 이어받겠다는 의지이자 한국 조계종의 본산에 어울리는 이름을 칭하려는 의도였다. 각황사는 [[1938년]] 현재의 조계사가 완공된 후 건축비용 마련 차원에서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을 이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