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실업야구/역사 (문단 편집) == 초창기(1946~1950년대) == [include(틀:한성실업야구연맹 초대 8구단)] 1946년 3월 25일 [[한국산업은행|식산은행]]에서 한성실업야구 창립을 선포했다. 장회택을 초대 회장으로 추대한 "한성실업야구 연맹"에 야구팀들이 합류했는데, 연맹의 최초의 가입 팀은 금융조합연합회 야구팀, 조선운수 야구팀, 조흥은행 야구팀, [[한국전력공사 야구단|경성전기 야구팀]], [[한국전력공사 야구단|남선전기 야구팀]], 조선전업 야구팀, 삼국석탄 야구팀, 중앙실업 야구팀 이렇게 8개팀으로 구성되었다. 7월 25일부터 3일간 한성실업야구연맹에서 최초로 주최한 야구대회인 "한성실업야구 창립 기념 대회"가 열렸다. [[대한야구협회]]와 자유신문사가 후원한 이 대회에 서울구락부, 중앙실업 야구팀, 철도국 야구팀, 계림구락부 등 총 5개팀이 참가해 대결을 펼쳤다. 이 대회에서는 중앙실업 야구단이 계림구락부를 7: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가 종료된 이후 9월 25일부터 "한성실업야구 추계 1차연맹전", "10월 10일 부터 추계 2차 연맹전"을 개최했다. 추계 1차연맹전에서는 총 10개팀이 참가했는데 다음과 같다. * [[미창 야구단|조선운수 야구단]] * 조선전업 야구단 * 체신국 야구단 * [[한국전력공사 야구단|경성전기 야구단]] * 조흥은행 야구단 * 경성부청 야구단 * [[식산은행 야구단]] * [[철도청 야구단|철도국 야구단]] * 중앙실업 야구단 * 서울 구락부 연맹전은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는데 1차 추계연맹전에서는 식산은행 야구단과 조선운수 야구단이 결승전에서 맞붙었지만 조선운수 야구단의 기권으로 식산은행이 실업야구 초대 우승팀으로 등극했다. 추계 2차연맹전에서는 위의 10개팀에서 재우구락부가 추가로 참가, 총 11개팀이 접전을 벌였고 초대 우승팀이었던 식산은행 야구단과 체신국야구팀의 결승전이 성사되었다. 다만 체신국 야구팀이 기권을 하면서 식산은행 야구단이 실업야구 첫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연맹전 사이에 쉬는 기간에는 [[한국전력공사 야구단|경성전기 야구팀]], [[한국전력공사 야구단|남선전기 야구팀]], 조선전업 야구팀 등 전기회사끼리 "전업단 리그"를 구성해 인기를 끌었다. 다음해인 1947년 2대 회장인 하상용 회장이 취임했고, 이해부터 춘추제로 리그를 나누어 진행했다. || 청군 ||[[한국전력공사 야구단|남선전기 야구단]], [[한국전력공사 야구단|경성전기 야구단]], 삼국석탄 야구단, 전업 야구단, 식산은행 야구단, 체신청 야구단 || || 백군 ||중앙실업 야구단, 서울시청 야구단, [[철도청 야구단]], [[농협 야구단|금련 야구단]], [[조선미곡창고 야구단|조선운수 야구단]], 조흥은행 야구단 || 4월 26일부터 12개팀이 참가한 춘계연맹전에서는 남선전기 야구팀과 조선운수 야구팀이 결승전에서 만났고 조선운수 야구팀이 9:2로 승리를 거두었다. 추계연맹전은 9월 15일에 개막, 춘계연맹전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10월 1일에 열린 결승전에서는 춘계연맹전 우승팀인 조선운수 야구팀이 [[이영민]]을 투수로 내세운 식산은행 야구팀을 8: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50년, 6.25가 발발, 리그가 중단되었지만 부산과 대구에서 한차례씩 연맹전을 치르기도 했다. 이때 많은 선수들이 군에 입대하였고 이때문에 1953년 3월에 육군 야구단 창단을 시작으로 공군 야구단도 창단, 뒤이어 해군과 해병대 야구단도 창단 되었다. 1953년에 종전이 되었고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 가던 1955년에 실업야구는 다시 일어섰다. 4월 24일부터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에서 종전후 열린 첫번째 연맹전인 춘계연맹전이 열렸다. 금융조합연합 야구단, 조선전업 야구단, 체신부 야구단, 조선방직 야구단, 조선운수 야구단등 5개팀이 참가한 이 대회는 풀리그로 진행되었고 3승 1무를 기록한 금융조합연합 야구단이 우승을 차지했다. 그뒤 [[경향신문]]사가 주최하는 백호기 실업야구 쟁패전[* 경향신문사가 주최했던 야구대회. 1956년에 군,실업야구 쟁패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진행방식은 1958년까지 춘계대회만 열렸던 1957년대회를 제외하고 춘,추제로 나뉘어 1년에 두차례 진행했다. 1959년, [[경향신문]]이 폐간되면서 [[대한야구협회]]에서 이 대회를 이어받았고 연 1회로 규모를 축소해 개최했다.]이 5월 29일부터 [[동대문야구장|서울 운동장]]에서 열렸다. 1회 백호기에선 남선전기 야구단, 금융조합연합 야구단, 조선운수 야구단, 공군 야구단, 육군 야구단이 참가했고, 육군과 금융조합연합 야구단이 각각 3승 1패를 기록하며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추계대회는 [[광복절]] 경축을 기념해서 8월 16일부터 5일간 개최되었고, 역시 풀리그로 진행, 4전 전승을 기록한 조선운수 야구단이 우승을 차지했다. [[1956년]]에 [[한국일보]]가 주관한 재일동포학생야구단이 한국을 방문 한 이후 [[1961년]] 일본 실업팀이 한국 방한 경기를 치루면서 한국 야구계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된다. 1959년 8월 26일 [[대한야구협회]] 대의원대회에서 실업야구 연맹을 승인해줬고, 이를 바탕으로 [[농협|금융조합연합회]] 박수희회장을 실업야구연맹 초대 회장으로 추대, 금융조합연합회 야구팀, 교통부 야구팀, 남선전기 야구팀, 육군 야구팀으로 구성된 실업연맹을 발표했다. 이듬해인 1960년에 대한야구협회에서는 정식으로 [[대한야구협회]]에 가입된 연맹으로 정식 승인해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