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외국어대학교/이야깃거리 (문단 편집) == 역사 관련 이야깃거리 == *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와 국제통상학과는 외교관 사관학교, 무역인 사관학교의 필요성을 절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1963년 설립되었다. *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는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정치외교학과, 국제통상학과와 같은 날 설립되었다. * 한국외대 부설 정치연구소는 처음에 ‘새마을연구소’로 출범하였다. 때문에 외교 말고도 정치 분야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이 키워주기, 밀어주기를 하려던 거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 외국어연수평가원은 1974년 정부와 한국무역협회의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공무원과 기업체 직원에게 어학연수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다. * 외국어연수평가원도 박정희 대통령이 설립에 개입했다. 1973년 10월 박정희가 주재한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외대 캠퍼스 내에 외국어연수원을 설립하자는 논의가 나왔다. * 개교 초기에 유엔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구본관 건설에 건축자재 지원을 받기도 하였는데, 유엔 한국재건단으로부터 교육비 지원과 더불어 타이프라이터, 녹음기, 반향기, 축음기, 라디오 등 당시 기준으로 첨단 교육 장비들을 들여왔다. * 한국전쟁이 휴전한 지 불과 4일밖에 안 지난 1953년 7월 31일에 '외국어대를 설립하라'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교시가 나왔다. 알다시피 전쟁이 끝난 지 고작 4일밖에 안 지난 시점이라, 나라는 찢어질 듯 가난했고 정부의 곳간은 텅텅 비어있어 결국 당시 문교부 장관이던 김법린이 한국정치경제대학교를 설립하려던 김흥배 박사를 설득해 외국어대를 사립으로 세우게 된 것. * 서울에서 1년, 길어야 3년만 지내다 용인으로 내려간 글로벌캠퍼스의 다른 학과들과 다르게 철학과는 무려 7년을 서울에 있다가 용인으로 내려갔다. 서울서 입학해 서울에서 졸업한 학생들이 많아서 초기 철학과 학생들은 서울캠퍼스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실제 철학과 동문회의 소원 중 하나가, 철학과를 다시 서울로 올려보내는 것이라고도 하며, 서울캠퍼스 스마트도서관 건립비용 최고액수 기부단체 중 한 곳이 철학과 동문회다.[* 다른 곳은 캘리포니아 동문회, 아랍어과 동문회.] * 개교 당시 영국 정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영국 대사관에서 본국 정부에 외대 지원을 요청하자, 영국 정부는 기꺼이 지원을 약속해 런던 대학을 수소문하여 명망 있는 영문학 교수를 외대에 파견한다. 이 인물이 C. Rainer로 외대 최초 외국인 교수 직함을 안고 있는 인물이다. 영국 외교관 중에서도 그레이엄 공사(Minister)가 워낙 외대를 각별하게 생각해 외대 설립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한국외대 탄생의 숨은 일등공신. 한편 프랑스 정부에도 똑같이 외대 지원 논의가 상신되었으나, 프랑스 정부는 영국 정부랑 다르게 바로 읽씹해버렸다고 한다. 당시 한국이 굉장히 보잘것없는 동방의 소국이었다지만 너무 매정하다.(...) * 외대의 개교기념일은 4월 20일이다. 개교기념일은 재단 설립일이나, 법인 인가일이나, 아니면 학교회의에서 단순 지정한 아무 의미없는 날짜일 수 있는데 외대의 개교기념일은 다행히도 의미가 있는 날이다. 외대 최초의 수업이 1954년 4월 20일에 열렸는데, 이 첫 수업을 기념하고자 4월 20일을 개교기념일로 지정하였다. 개교기념일 당일은 학교 휴일이므로 개교기념일 전날[* 새내기들은 휴일이면 일단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학은 고등학교랑 달라서 교수의 수업 재량이 보장된다. 교수가 진도광이면 개교기념일에 수업을 하는게 가능하며, 휴일로 날아간 수업을 보충하고자 주말에 보강 들으러 학교오라고 독촉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교수들도 쉬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몇몇 특이한 분들 빼면 이런 일은 잘 없다.-- 2021년은 개교기념일과 중간고사 시험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개교기념일 시험일자가 학교측의 통지로 한 주 뒤로 연기되었다. 남들 다 시험 끝났는데 1주 더 늦게까지 시험공부 해야하는 학생들을 위해 묵념.] 학교식당엔 개교기념일 기념 떡이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