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외국어대학교/임원 (문단 편집) ==== 제3대 학장서리 한종원 ==== '''1960.6.17.~1961.1.19''' [[1905년]]에 [[멕시코]] [[유카탄]] 지역으로 이민을 갔으며 한인학교였던 진성국어학교를 다녔다. 그 후 [[메리다]]에서 생활하다가 [[1921년]]에는 [[멕시코 시티]]로 이주하여 신학교에서 공부하였지만, 병으로 인해 그만 두고 메리다로 돌아왔다. [[1922년]]에는 메리다지방회 외교원을 지냈고, 그 뒤에는 교육위원을 맡아서 한인 2세들을 교육하는데 전념했다. [[1941년]] [[5월]]에 멕시코시티로 옮긴뒤, 묵경지방회 선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태평양전쟁 당시에 한인의 안전 보호와 함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후 묵경지방회는 폐쇄되었으나, 오랜 시간 후 한종원은 직접 묵경지방회를 부활시키기에 이른다. 이에 더해 [[멕시코 시티]]의 3대 일간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과 한국의 [[독립운동]], 멕시코 한인들의 입장을 게재하는 등 멕시코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을 장려했다. 그 뒤 멕시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서, [[베라크루스(도시)|베라크루스]]의 할라발대학과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등에서 역사학 교수를 지냈다. [[1949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특사인 김동성과 함께 친선사절로 활동하였으며, [[1955년]] [[12월 11일]]에 귀국하여 본교 서반아어과 주임교수를 맡았다. [[1956년]]에 주미대사 [[양유찬]]의 수행원으로 남미 20여개국을 탐방한 뒤, [[1960년]] [[6월 17일]]부터 [[1961년]] [[1월 19일]]에 본교 학장서리를 지냈다가 멕시코로 돌아갔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재외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장려하고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외교사에도 한 획을 그은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